['기업 韓流' 베트남을 가다] 높은 법인세·뇌물 관행 '걸림돌'…인구 절반 20~30대는 '성장 잠재력'
국내 중소 태양광 업체 사장인 A씨는 지난 5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베트남 바이어와 1차 협상을 통해 10억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맺고 생산 준비까지 마쳤다. 그러다 납품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베트남 본사에서 “물건이 필요없게 됐다”며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한 달 전 국내 헤어드라이어 기업인 B사도 베트남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 4월만 해도 5만달러어치 물건을 사겠다고 한 베트남 유통 업체가 갑자기 주문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이렇다 할 해명조차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기업인들은 수시로 바뀌는 ‘베트남식 협상 문화’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한 업체 사장은 “베트남 업체들은 1차 협상에선 거의 모든 것을 들어줄 것처럼 하다 세부 협상에서 본인들이 제시한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계약을 없던 걸로 하거나 거래 규모를 대폭 축소한다”고 설명했다.

현지 진출 기업들은 베트남 정부 내 만연한 부패 관행이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베트남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베트남에 있는 해외 기업인들의 50%가량이 베트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뇌물을 주는 비중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베트남상의는 내다봤다.

최근 들어선 임금 인상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현지 기업의 임금 인상률이 외국계 기업보다 높았지만 2011년부터 인상률이 같아졌다. 올해만 최저 임금이 16~18%가량 올랐다. KOTRA가 동남아 및 서남아 13개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371개를 조사해봤더니 지난해 베트남 임금인상률이 14.8%로 1위였다. 최저 임금 인상률도 베트남이 27~29%로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저임을 보고 무작정 진출한 일부 중소기업들은 낭패를 볼 가능성이 적지 않다.

높은 세율 역시 외국 기업의 투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실제 법인세율은 30%로 나타났다.

세금 부담을 버티지 못하는 외자계 기업들이 잇따라 파산하자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실효세율을 20%로 낮추는 안을 올해 세제 개편안에 포함시켰다.

국내 기업인들은 베트남에 개선 사항 못지않게 장점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1억 가까운 인구의 절반 이상이 20~30대로 젊은 편이어서 성장잠재력이 크다. 베트남 전쟁 이후 태어난 젊은 층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경제 활력이 넘치고 소비력도 뛰어나다. 베트남 잠재 경제 성장률을 높게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트남인들의 손기술이 탁월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안경 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력도 좋아 휴대폰 같은 정밀 전자제품 조립에 적합한 편이다.

베트남이 한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덕에 한국에 우호적인 점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중 하나다. 지난 2011년 베트남은 한국의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본뜬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한국형 새마을 운동도 도입하고 있다.

하노이=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