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이 31도를 기록한 4일 오후 서울 명동 관광특구에 있는 한 화장품 매장에서 출입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홍선표 기자
낮 최고기온이 31도를 기록한 4일 오후 서울 명동 관광특구에 있는 한 화장품 매장에서 출입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홍선표 기자
정부가 전력사용 제한조치로 ‘문 열고 냉방’ 영업을 집중 단속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단속 사각지대를 노린 영업 행태는 근절되지 않은 것으로 4일 확인됐다. 문을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트는 개문(開門) 영업은 비교적 줄어들었지만 일부 백화점과 주요 상권의 매장은 에어컨을 ‘펑펑’ 틀어 전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주말에 단속반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노려 실내온도를 적정 수준(26도)보다 낮은 22~24도로 맞춘 곳이 적지 않았다. 이달 중순부터 9월 초까지 폭염이 예고된 가운데 5일부터 기업체를 대상으로 강제 절전이 시행되지만 일각에서는 눈가림 식 영업을 계속하고 있어 단속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시급하는 지적이 나온다.

○“주말은 단속 사각지대”

서울 낮 최고기온이 31도였던 4일 오후. 서울 강남역, 명동, 인사동 등에 있는 대부분의 매장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풀가동’하고 있었다. 단속반의 눈에 띄기 쉬운 개문 영업은 자제한 대신 실내온도를 낮춘 것이다.

1~2층 에어컨 10대를 모두 가동 중인 강남역의 한 대형 신발매장 실내온도는 기준 온도보다 4도나 낮은 22도였다. 주말에는 단속반이 나오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렸다. 매장 직원 A씨는 “이 더운 날 부채질하면서 쇼핑할 손님이 어디 있느냐”며 “주말에는 구청에서 단속을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어 손님들의 불평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강남지역 한 대형 백화점은 실내온도가 24~25도로, 서늘한 공기 탓에 긴팔을 입고 쇼핑하는 고객이 목격되기도 했다. 주부 정모씨(49)는 “지난 3일 개장 직후 찾았더니 실내온도가 너무 낮아 감기에 걸릴까 백화점 측에 온도를 높여달라고 전화했다”며 “전력대란 우려로 강제 절전까지 시행한다는데 뭔가 손발이 안 맞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명동에 있는 한 의류매장은 에어컨 6대를 모두 가동시켜 실내온도를 23도로 낮췄다. 직원 B씨는 “주말에는 단속반도 오지 않는데 실내온도를 높게 유지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폭염 대비 ‘단속 실효성’ 강화해야

정부는 5일부터 30일까지 전력다소비 업체 등 2637곳을 대상으로 전력사용량을 3~15% 낮추는 절전 규제를 시행한다. 상당수 기업은 전력난 극복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산업적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평일 전력사용량을 줄이려면 생산 라인을 일부 멈춰야 한다”며 “과태료를 물더라도 생산을 줄이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도 “365일 24시간 가동해도 시간이 모자란데 절전을 이유로 일부 라인을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대기업에는 절전을 강요하면서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계 대상 단속에는 허점을 드러내면서 정책의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단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 행해지는 냉방 단속도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산업통산자원부가 지난달 30일 기준 전국 33개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14만여개 매장을 점검한 결과 개문냉방과 26도 미만 냉방으로 450개 매장에 경고장만 갔을 뿐 과태료는 부과된 적이 없다. 게다가 일부 상인들처럼 주말을 노려 실내온도를 낮추거나, 단속반이 올 때만 냉방기를 송풍·제습 모드로 바꾸면 적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문을 열고 냉방하거나 실내온도를 26도 미만으로 낮춘 곳에 대해선 7월1일부터 8월 말까지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단속을 벌여 1회 위반 때 50만원, 2회 100만원, 3회 200만원, 4회는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지훈/홍선표/서욱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