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잇따라 ‘집단 소송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 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인 마트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한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라면 4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결정이 엉뚱하게 해외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빌미가 된 사례다.

한인 마트 측은 소비자 피해 규모가 28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액의 3배를 물리는 징벌적배상제를 감안해 라면 4사는 미국에서 불리한 재판을 받으면 최대 8400억원을 물어야 할 위기에 놓였다.

라면업계 "공정위 무리한 담합 결정이 수천억원대 美소송 빌미"

○뒤통수 맞은 라면업계

미국 LA지역 한인 마트가 낸 집단소송에 대해 라면업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미국 쪽 소송 움직임에 대해 회사 법무팀이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며 “상대방의 요구가 무엇인지 공식적으로 밝혀지면 입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있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담합 판결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한국야쿠르트 등 4개 라면회사가 10년에 걸쳐 가격을 담합했다며 총 1354억원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이 미국 내 집단소송의 근거가 됐다.

라면업계는 당시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라 농심이 라면값 인상 폭을 조정했고, 후발 사업자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한 것”이라며 “이를 담합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반발했었다.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활용해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된 삼양을 제외한 나머지 3개사는 공정위 결정에 불복해 작년 하반기 서울고등법원에 잇따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농심 등 주요 라면회사들이 제기한 과징금 부과에 대한 취소 청구소송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라면업계의 손을 들어주면 해당 한인마트가 담합으로 인한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는 9~10월께 나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국내에서와 달리 해외에서는 전적으로 개별회사의 판단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만큼 미국 현지에서 담합혐의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도 밝히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의 경우 미국에서 판매하는 물량의 대부분을 LA 현지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라면회사별로 원가구조와 유통 단계가 완전히 달라 담합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담합 결정을 내릴 때도 수출품은 대상이 아니었다”며 “미국 로펌들이 돈을 노리고 집단 소송을 기획해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장 실적이 특히 좋은 농심은 이번 소송으로 현지에서 기업 이미지가 나빠져 영업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억4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던 농심의 미국 현지법인 농심아메리카는 연초 월마트와의 직거래 계약을 체결한 것 등을 계기로 올해 매출을 2억달러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소송 위협 시달리는 한국 기업들

국내 기업들의 세계시장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에서 소송의 위협에 시달리는 빈도도 잦아지고 있다. 연비 과장으로 집단 소송 위기에 처한 현대자동차는 자발적인 보상계획을 발표해 합의를 시도하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 가격 담합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한 LG디스플레이는 30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첫 심리를 받는다. 코오롱은 500억원 규모의 아라미드 탄소섬유를 판매했다가 특허권을 보유한 미국 듀폰사로부터 1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한국의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현지 경쟁업체들이 한국 기업의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도 부풀려 소송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집단소송을 대리해 온 미국계 로펌인 폴 헤이스팅스의 김종한 대표 변호사는 “미국의 기업 관련 소송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모두 소송에 쏟아붓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특히 영업직원들의 준법감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효/송종현/강진규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