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씨병 진단을 받은 90대 남편이 52년을 함께 살아온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 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각자 병마와 싸우다 사이가 나빠진 노년 부부라 하더라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일방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판사 김귀옥)는 남편 A씨가 부인 B씨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8일 발표했다.

1956년부터 동거하다 1961년 혼인신고를 한뒤 화목하게 지내던 이들 부부는 A씨가 2010년 파킨슨씨병 진단을 받고, 그 해부터 B씨가 치매 증세를 보이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할 만큼 건강이 나빠진 부부는 실버타운과 지방에 있는 별장 등을 전전했고, 2011년께 서로 크게 다툰 뒤부터는 아예 떨어져 살았다.

남편 A씨는 폐렴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이혼 소송을 냈다. 그는 “부인이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버렸다”며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B씨는 실버타운에서 다시 같이 살자는 뜻을 나타냈다.

법원은 A씨 주장만으로 민법상 이혼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혼인생활을 계속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A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다고 인정할 수 없어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며 “이혼을 전제로 하는 위자료 및재산분할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B씨가 동거·부양의 의무를 저버린 채 남편을 악의적으로 유기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A씨가 부인에게 폭행, 학대, 모욕 등 부당한 대우를 받지않았고 두 사람은 50년 이상 부부로 서로 의지하고 신뢰했다”고 덧붙였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