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룡 회장이 골프장을 소재로 그린 작품 ‘팜스프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해룡 회장이 골프장을 소재로 그린 작품 ‘팜스프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꼬챙이나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눈만 뜨면 보이는 인왕산과 부암동 계곡물이 세상의 전부였다. 부모님은 집에서 공을 만들어 팔았다. 동네에서는 그를 ‘볼(ball)집 아이’라 불렀다. 열여섯 살 때 서울 경동고 미술반에서 김진명 화백(1916~2011)을 만났다. 모두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인지라 그림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다.

김 화백의 미대 진학 권유에도 불구하고 성균관대 약대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종근당에 입사해 25년가량 월급쟁이로 생활하다 1982년에 독립해서 제약회사를 차렸다. 화가이자 컬렉터인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78) 이야기다.

오는 8~14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여는 박 회장은 “월급쟁이, 경영인, 화가로 이어지는 나의 삼모작 인생은 경영학적 테크닉과 회화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조화로운 세계로의 도전”이라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우며 미술로 덕을 쌓고 싶다”고 말했다.

1959년 종근당에 입사해 상무이사, 한국메디카와 한국롱프랑제약 대표이사를 거쳐 고려제약 회장을 맡고 있는 박 회장은 2005년 회사 경영을 아들(박상훈 사장)에게 일부 넘겨주고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려 왔다. 해외 스케치를 나가기도 하고, 제주도 말 사육장과 골프장을 찾기도 했다. 그동안 그린 작품이 120여점에 이른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7시30분까지 그림 작업에 몰두해 온 결과다.

박 회장이 본격적으로 붓을 든 것은 2000년 초. 화가인 여동생에게 기본기만 배운 그는 처음에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 미술의 기본 토대가 데생이고, 데생의 소재가 인물이란 점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얼굴에 나타난 침묵의 이미지, 삶의 정신을 화폭에 구현하는 데 붓끝을 집중했다.

최근에는 주로 말과 골프장, 풍경화에 빠져 있다. 그는 “틈만 나면 국내외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정감이 넘치는 장면을 화면에 풀어냈다”며 전시회 도록에 담긴 역동적인 말들과 해외 명승지, 골퍼들의 이름과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건 스리랑카의 차밭인데 최근 그렸어요. 팜스프링에서 골퍼들의 희로애락을 묘사했고요. 골프장도 아름답지만 말들의 질주본능에 매료돼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박 회장이 그림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산고(産苦)에 비유되는 예술 창작에 뛰어든 것은 못다 이룬 꿈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정 때문”이라며 그동안 의약품으로 대중과 소통하던 내가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기업 경영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의 연속이죠. 잘 짜여진 구도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아프리카 미술품 수집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박 회장은 ‘삶에 물들이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 그동안 작업한 역동적인 말 그림을 비롯해 인물화,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그린 풍경화, 골퍼들의 움직임을 재치 있게 잡아낸 근작 30여점을 내보인다. 그는 “어렵고 힘들어도 누구나 그림을 보면 마음까지 평안해진다”며 “모든 사람이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면 내 소임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