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고발 부추기는 하도급법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최근 통과된 하도급법 개정안은 ‘고발’과 ‘소송’을 제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납품가격을 인하하거나, 반품을 하거나, 발주를 취소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법당국에 고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안이 ‘경제민주화법’으로 불리는 것은 거래 당사자인 갑(甲)과 을(乙) 사이의 ‘불균형한 역학 관계’를 고치겠다는 취지 때문이다. 대기업(갑)이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해 중소기업(을)을 착취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기업은 갑이고, 중소기업은 을’이라는 대립 구도가 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논외로 치자. 하도급법 개정안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까.

부자연스럽고 불편

새로운 법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려면 우리 사회의 질서나 도덕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자연법적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자연스러움’은 갖춰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사회 통념과 어울리지 않고, 경제적인 손해까지 끼쳐서는 그 법이 오래 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도급법 개정안은 ‘빵점’이다. 매일 만나 거래하는 상대방을 ‘고발’하라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부자연스럽고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이라는 제도가 2011년 생겼는데도 이를 신청한 기업은 딱 한 곳에 그쳤다. 이것조차 대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거래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신고하거나 고발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나오기 이전의 하도급법(현행)은 고발할 수 있는 대상을 ‘기술 탈취’로만 한정했다. 애써 개발한 기술을 빼앗긴 사람은 부당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고, 그 기술을 훔친 사람 역시 가슴이 떨리고 꺼림칙할 것이다. 기술 탈취라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사람들은 공감한다. 하지만 납품가격 인하나 발주 취소, 반품과 같은 행위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경제활동이다. 이런 것들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하도급법 개정안이다.

中企 밥그릇 깨지 말아야

구매를 담당하는 대기업 직원의 인사고과를 ‘동반협력지수’와 같은 것으로 평가하라는 것 역시 자연스럽지 않다. ‘원가 절감’이라는 단순명쾌한 성과지표를 놔둔 채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피차 구차스럽고 번거로운 일이다.

납품 단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갑의 횡포’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초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업체 200개사를 대상으로 제조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납품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당한 이유 없이 일률적으로 감액했다’는 의견은 2.8%에 불과했다. 반면 ‘무리한 가격경쟁으로 납품가격 인하 불가피’라는 응답은 32.4%나 됐다.

하도급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돼 ‘부당한 납품가격 인하’가 기대한 만큼 줄고 중소기업 이익이 그만큼 늘어난다면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납품가격 인하 이외의 방식으로 거래 관계를 유지하려면 담당 직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향응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하도급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부자연스러움만 키울 공산이 크다. 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브레이크만 잔뜩 달아 놓아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발주처를 외국으로 돌리는 대기업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이 그나마 갖고 있는 밥그릇마저 깨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