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한경데스크] 고발 부추기는 하도급법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
    [한경데스크] 고발 부추기는 하도급법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최근 통과된 하도급법 개정안은 ‘고발’과 ‘소송’을 제도화한 것이 특징이다. 납품가격을 인하하거나, 반품을 하거나, 발주를 취소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법당국에 고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안이 ‘경제민주화법’으로 불리는 것은 거래 당사자인 갑(甲)과 을(乙) 사이의 ‘불균형한 역학 관계’를 고치겠다는 취지 때문이다. 대기업(갑)이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해 중소기업(을)을 착취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기업은 갑이고, 중소기업은 을’이라는 대립 구도가 진실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논외로 치자. 하도급법 개정안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까.

    부자연스럽고 불편

    새로운 법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려면 우리 사회의 질서나 도덕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자연법적 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자연스러움’은 갖춰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사회 통념과 어울리지 않고, 경제적인 손해까지 끼쳐서는 그 법이 오래 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하도급법 개정안은 ‘빵점’이다. 매일 만나 거래하는 상대방을 ‘고발’하라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부자연스럽고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이라는 제도가 2011년 생겼는데도 이를 신청한 기업은 딱 한 곳에 그쳤다. 이것조차 대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거래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신고하거나 고발하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나오기 이전의 하도급법(현행)은 고발할 수 있는 대상을 ‘기술 탈취’로만 한정했다. 애써 개발한 기술을 빼앗긴 사람은 부당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고, 그 기술을 훔친 사람 역시 가슴이 떨리고 꺼림칙할 것이다. 기술 탈취라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사람들은 공감한다. 하지만 납품가격 인하나 발주 취소, 반품과 같은 행위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경제활동이다. 이런 것들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하도급법 개정안이다.

    中企 밥그릇 깨지 말아야

    구매를 담당하는 대기업 직원의 인사고과를 ‘동반협력지수’와 같은 것으로 평가하라는 것 역시 자연스럽지 않다. ‘원가 절감’이라는 단순명쾌한 성과지표를 놔둔 채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피차 구차스럽고 번거로운 일이다.

    납품 단가를 떨어뜨리는 것이 ‘갑의 횡포’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 초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업체 200개사를 대상으로 제조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납품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당한 이유 없이 일률적으로 감액했다’는 의견은 2.8%에 불과했다. 반면 ‘무리한 가격경쟁으로 납품가격 인하 불가피’라는 응답은 32.4%나 됐다.

    하도급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돼 ‘부당한 납품가격 인하’가 기대한 만큼 줄고 중소기업 이익이 그만큼 늘어난다면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납품가격 인하 이외의 방식으로 거래 관계를 유지하려면 담당 직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향응을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하도급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부자연스러움만 키울 공산이 크다. 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브레이크만 잔뜩 달아 놓아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발주처를 외국으로 돌리는 대기업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이 그나마 갖고 있는 밥그릇마저 깨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승윤 중소기업부장 hyunsy@hankyung.com

    ADVERTISEMENT

    1. 1

      매달 초 발표되던 소비자물가, 12월은 왜 월말에 공개할까? [남정민의 정책레시피]

      원·달러 환율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덩달아 같이 주목받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물가입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중간재·수입재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물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중간값을 지난달 말 1.9%에서 이달 중순 2.0%로 올려 잡은 것도 이런 영향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유달리 원·달러 환율 변동세가 심했던 이번달 12월. 그렇다면 글로벌 IB들 말고, 국가데이터처는 언제 12월 소비자물가동향 자료를 발표할까요?원래 국내 소비자물가동향은 한 달의 시차를 두고 그 다음 달 초 발표가 됩니다. 예컨대 ‘2025년 11월 소비자물가동향’은 이번달 2일에 자료가 나왔죠. 12월 초에는 11월 물가동향이, 11월 초에는 10월의 물가동향이 발표되는 식입니다.하지만 딱 한번 예외인 달이 있습니다. 바로 12월입니다. 12월 소비자물가동향은 내년 1월초가 아닌 올해 마지막 날, 즉 12월 31일에 발표되는데요. 왜 12월 물가동향만 콕 집어 같은 달에 발표하는 걸까요?비밀은 ‘연간 물가상승률’에 있습니다. 12월 소비자물가동향은 자료 이름부터 ‘2025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으로 배포됩니다. 12월 한달간 물가동향에 더해 2025년 한해 동안의 물가동향이 같이 공개되기 때문에 1년간 물가상승률, 품목별 물가지수 동향도 발표됩니다. 정부가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을 2025년이 지나기 전에 확정을 지어준다는 데 의미가 있는 셈이죠.물가상승률은 대학등록금, 연봉협상,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인상분 등을 결정할 때 반영되는 가장 기본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만약 ‘12월 및 연간 소

    2. 2

      '예금보다 낫다' 소문에 조기 완판…나흘 만에 1조 '싹쓸이'

      종합투자계좌(IMA)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 18일 첫 출시한 ‘한국투자 IMA S1’에는 나흘 만에 1조원이 몰렸고, 미래에셋증권이 22일 선보인 ‘미래에셋 IMA 1호’도 모집 금액의 다섯 배인 약 5000억원이 유입되며 ‘완판’(완전 판매)됐다. 원금 보장 상품인 데다 은행 정기예금보다 높은 연 4% 수익률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다만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고 성과보수와 총보수가 높다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만기 때 한꺼번에 투자 수익을 받아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국내 첫 IMA, 조기 완판 행렬IMA는 일반 펀드와 달리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면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기업의 자금 조달과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정부가 처음으로 시행하는 제도다. IMA 상품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만기 1~2년의 저수익 안정형(목표 수익률 연 4~4.5%), 만기 2~3년의 중수익 일반형(연 5~6%), 만기 3~7년의 고수익 투자형(연 6~8%) 등이다. IMA는 실적 배당형으로 사전에 확정 수익률을 제시하지 않는다. 만기 시점의 운용 성과와 자산 가치에 따라 고객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최종 결정된다.  한국투자 IMA S1은 기준 수익률이 연 4%로 설정된 2년 만기의 폐쇄형 구조다. 최소 가입액은 100만원이며 투자 한도는 없다. 조달한 자금을 인수합병(M&A) 인수금융 대출, 중소·중견·대기업 대상 대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등에 투자한다. 상품의 총보수는 연 0.6%로 주식형 펀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기준 수익(연 4%)을 초과하는 성과가 발생하면 초과 수익에 대해 성과보수(40%)를 적용한다.

    3. 3

      기업은 역대급 돈잔치, 정부 곳간은 '텅텅'…무슨 일이 [글로벌 머니 X파일]

      최근 미국 중심으로 기업의 수익이 크게 늘었지만 정부 관련 세수는 그만큼 증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는 큰 도움을 줬지만 나라 살림에는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AI의 재정 역설' 현상이 나타나면서다.S&P500 기업의 마진 '13%'27일 글로벌 금융정보업체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올 3분기 미국 S&P500 기업들의 혼합 순이익률은 13.1%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5년 평균인 12.1%를 1%포인트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팩트셋이 관련 데이터를 집계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S&P 다우존스 인덱스가 집계한 영업 마진 역시 지난 9월 30일 기준 13.6189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단순히 매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매출 한 단위당 남기는 이익의 비율이 구조적으로 높아졌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공장을 짓고 사람을 더 뽑아야 했다. 인건비는 기업 성장의 필수 비용이었다. 하지만 AI 확산으로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와 매켄지 등 투자은행들은 이를 '비직원 레버리지' 효과로 설명한다.최근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발표한 지난 3분기 미국 GDP 및 소득 통계에서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3분기 미국 기업 이익(재고 평가 및 자본 소모조정 포함) 증가 폭은 전 분기(68억 달러) 대비 무려 24배 급증한 1661억 달러를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RED)이 집계한 3분기 미국 법인세 후 이익은 연율 환산 기준 3조 5898억 달러에 달했다. 기업들에는 '황금기'다. 이익은 역대급인데 법인세는 감소보통 기업이 돈을 벌면 세금이 걷히고, 나라 살림이 펴지며, 재정 건전성이 좋아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