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동계인턴을 거쳐 지난해 신입사원이 된 김인석 씨는 지난 3일 서울 잠실 롯데마트 본사 매장에서 “롤티슈 샴푸 린스 등을 골고루 써보고 고객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롯데마트 동계인턴을 거쳐 지난해 신입사원이 된 김인석 씨는 지난 3일 서울 잠실 롯데마트 본사 매장에서 “롤티슈 샴푸 린스 등을 골고루 써보고 고객들에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아침 점심 저녁마다 다른 치약을 쓰는 남자가 있다. 그뿐 아니다. 샴푸와 린스도 그날의 머릿결에 맞게 다른 제품을 쓴다. 날씨와 피부 상태에 따라 세안제도 달라진다. 칫솔 치약 비누 샴푸 린스 보디로션 등 생활용품을 종류대로 모두 갖춰놓고 사는 남자다. 도대체 이 사내는 뭘 하는 사람일까.

롯데마트 구리점의 생활용품 영업담당 신입사원 김인석 씨 이야기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잠실역 롯데마트 본사에서 만난 김씨는 “제 자취방엔 평생 쓸 롤티슈, 치약, 칫솔, 샴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한번 오셔서 마음대로 가져가세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는 “신제품을 제가 먼저 써보지 않고 어떻게 고객들께 권해드릴 수 있겠어요”라며 자칭 ‘생활용품 얼리어답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짙은 눈썹에 검은색 구두와 롯데마트 사원복 차림의 김씨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화려한 ‘스펙’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근성으로 롯데마트 배지를 단 그의 경험과 작년 7월24일 입사 후 8개월 동안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들어봤다.


○2년 새 자격증만 13개

2009년 대학 2학년, 어느덧 나이는 24세. 복학생 김씨는 20대 중반을 향해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문의 피플면 기사에 눈이 꽂혔다. ‘군 생활 중 자격증 10개 딴 소대장’. 엄청난 충격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자격증을 10개 이상 땄다는 여고생 기사도 나왔다. “취업이 어렵다는데 자격증을 많이 따는 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딴 자격증은 컴퓨터활용능력 2급. 자격증 취득까지는 한 달 반이 걸렸다. 내친김에 MOS마스터·워드 1, 2급에다 유통관리사 2급까지 해냈다. “자신감이 생기니 더 어려운 자격증까지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는 이어 사무자동화산업기사·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텔레마케팅관리사·컴퓨터활용능력 1급과 비서 1급까지 땄다. 그렇게 2년간 취득한 자격증만 13개. 말이 13개지 쉽지는 않았다. “손가락이 부서질 정도로 필기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단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요. 제가 생각해도 대단해요.” 오직 독학으로 공부해 13개의 자격증을 따는 데 든 비용은 불과 50만원 정도였다.

○면접 복장은 아르바이트로 해결!

대학 4학년 때 경험한 호프집 ‘알바’는 서비스 정신을 익힌 계기가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지금 마트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돈의 소중함도 일깨워 줬다. “땀 흘려 번 돈의 뿌듯함…. 그 돈으로 롯데마트 동계인턴 면접을 위한 정장·구두·벨트·넥타이를 샀어요.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저 스스로 해결한 것이죠.”

요즘 많은 ‘취준생’들이 매달리는 취업컨설팅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정말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필요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옆자리에 함께 한 입사 동기 서지혜 씨(인사부)도 “면접컨설팅보다 롯데마트 알바 경험이 오히려 입사엔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작년 초 겨울방학에 했던 7주간의 인턴 경험은 유통맨의 기초를 닦는 시기였다. 쉬는 날엔 다른 대형마트 시장조사를 하고, 근무시간이 끝난 다음에도 영업 담당자를 도우며 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무리 지었다.

“인턴 기간 동안 제 삶은 롯데마트 강변점을 중심으로 이뤄졌어요. 어떤 일을 간절히 바라고 안달 난 상황이라면, 모든 생활이 그 일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렇게 영업담당자를 돕다 보니 자연스레 회식 자리에 참석하는 일도 많았다. “강변점 지점장은 제가 ‘개점 이래 최다 회식 참석 인턴’이라며 저의 적응력에 놀랐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죠.”

○“1등 롯데마트 향한 밀알 되고 싶어”

인턴 후 최종면접을 앞두고 강변점의 한 ‘행복사원’(롯데마트의 물품진열과 매장관리를 담당하는 영업사원 또는 계산업무를 하는 캐셔)이 김씨에게 ‘빨간 팬티’를 선물했다. 꼭 좋은 결과를 기다린다며…. 그 빨간 팬티는 ‘행운 팬티’가 됐다. “최종 합격의 기쁨을 줬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폐차될 지경의 교통사고에서도 저를 지켜줬죠. 지금도 큰일이 있을 때면 행복사원에게 받은 행운 팬티를 입고 갈 정도예요. 그 누님께 너무 감사해요.”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롯데마트 신입사원이 된 김씨. 구리점에서 9개월째 일상용품 영업을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기저귀 환불을 요구한 고객을 따라 창구로 갔는데 다른 고객이 빨대를 달라고 하는 거예요. 몇 개를 집어 드렸더니 ‘내가 음료수를 몇 상자나 샀는데 겨우 이것만 주냐’며 제 뺨을 치려고 하시는 거 있죠. 그래서 재빨리 빨대를 두 손으로 한 움큼 쥐어 드려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꿈에는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다. “롯데마트의 목표가 2018년까지 ‘아시아 1등 유통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회사의 그 목표에 0.0001%만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쉬는 날에도 오전엔 마트에 나온다는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제가 롯데마트 구리점 생활용품 파트 사장이잖아요”라며 밝게 웃었다. 밤 9시에 인터뷰가 끝났지만 그는 뒷마무리를 위해 다시 롯데마트 구리점으로 향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