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재건축 시장에 대법원발(發)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달 18일 대법원이 시공사 선정 때 조합원 과반수 동의를 받지 못했던 서울 신반포 2차 아파트에 대해 ‘시공사 선정 무효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서초구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최근 반포주공 1단지(1572가구) 3주구에 대해 시공사 선정이 무효라는 해석을 내놨다.

개포주공 등 2002년 12월 이전 시공사를 선정한 다른 단지들도 소송이 걸릴 경우 무효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를 둘러싼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내분이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반포주공 1단지 3주구도 시공사 선정 무효

대법원은 지난달 신반포 2차 아파트의 시공사 선정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건축 관련 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2002년 12월 제정됐다. 이 법에서는 시공사를 선정할 때 소유자 과반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또 경과 규정을 둬 법 시행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단지들도 주택 소유자의 과반 동의를 얻은 경우에는 시공사 지위를 인정토록 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재건축 단지들은 과반이 아닌 ‘총회 참석 주민의 과반 동의’만 받았다. 이후 추가로 동의서를 걷어 과반을 얻은 뒤 구청에서 시공사 승인을 받았다. 대법원은 “총회 당시 과반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추가로 받은 동의서는 효력이 없다는 취지다.

판결 파장은 당장 주변 단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초구는 시공사 선정의 적법성 여부를 묻는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주민들의 질의에 적법 요건을 못 갖췄다고 답변했다. 이 단지는 조합원이 1572명이다. 하지만 2002년 7월 총회에서 과반(786명) 동의를 채우지 않고 635명의 동의만 받았다.

반포주공 1단지 3주구 추진위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 외에도 재건축 진행 과정의 대부분이 무효인 것으로 드러나 10년간 진행해온 재건축 사업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 ‘초비상’

도정법 제정 이전에 시공사를 선정한 대부분의 다른 단지들도 비상이다. 과반 동의 요건을 채운 곳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을지의 차흥권 변호사는 “당시에는 시공사 간 수주 경쟁이 치열해 대다수 단지가 동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시공사를 선정했다”며 “소송이 걸리면 기존 시공사 선정이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포주공 1~4단지 등 개포동 일대 재건축 단지들이 대표적이다. 일원 현대, 반포한양, 잠실주공 5단지, 은마아파트 등도 도정법 제정 이전에 시공사를 뽑았다.

행정심판까지 거쳤더라도 시공권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강남구청은 시공사 선정의 적법성 논란이 일자 개포주공 1·3 등에 대해 행정심판을 거쳐 시공사 선정을 승인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시공사는 행정심판이 나온 이후 6개월 안에 주민소송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공권이 확정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기송 천지인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중대·명백한 하자에는 시효가 없기 때문에 시공사 선정 무효 관련 민사소송이 걸리면 기존 시공권 계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체 간 시공권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건설사들이 다른 회사의 시공권을 뺏기 위해 일부 조합원을 앞세워 시공사 선정 총회 무효 소송을 내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조합원 간 내분이 격해져 재건축이 지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조합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굳이 10년 이상 호흡을 맞춰온 시공사와 결별할 이유는 없지만 기존 시공사가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언제든 시공사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개포주공 단지의 한 조합장은 “향후 시공단가 협상 등을 진행할 때 기존 시공사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성근/이현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