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거 이후 이탈리아 정국이 미궁 속에 빠졌다. 하원에서 과반을 확보했지만 상원을 장악하지 못한 민주당은 재선거를 피하기 위해 소수 정부(과반이 넘지 않는 연립정부) 구성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른 정당과의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부 구성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탈리아는 물론 스페인 등 주변국 국채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민주당 대표는 26일(현지시간) “민주당은 정부를 구성할 책임이 있다”며 “소수 정부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2위를 차지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자유국민당도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당은 정부 구성에 실패해 재선거를 치를 경우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의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당 ‘오성운동’의 지지율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오성운동은 이번 총선에서 23.8%의 득표율(하원 기준)로 3위를 차지했다.

정부 구성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릴로는 “기존의 무능한 정당들과 손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안젤리노 알파노 자유국민당 비서실장은 “정부 구성 협상은 3월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한 달 동안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유럽 금융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놓은 시장 안정 정책이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유럽의 금융시장이 안정된 건 지난해 9월 ECB가 단기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를 발표한 이후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당시 “엄격한 긴축정책을 이행하는 국가의 국채만 사들이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하지만 총선 결과 이탈리아는 더 이상 기존의 긴축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즉 ECB가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총선거(24~25일) 직전 연 4.2% 수준이던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날 4.91%까지 올랐다.

위기는 전염되고 있다. 이탈리아 총선 전 각각 연 5.1%, 6.1% 정도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이날 각각 연 5.36%, 6.57%로 급등했다. 영국 투자회사 인사이트인베스트먼트의 폴 램버트 외환부문 대표는 “ECB가 약속(단기국채 무제한 매입)을 지키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