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해골 바가지' 같은 근본 뒤흔드는 각성 있어야
순간의 변화가 지속성 갖추려면 새 습관·변화 강화장치도 중요
우리 삶에 변화를 시도한 사람들이 곧 좌절하게 되는 이유는 삶의 관성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신념, 습관, 신체조건,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한 요소의 결합이 만들어 놓은 최적의 상태일 경우가 많다. 최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갖가지 요소의 결합으로서는 최적의 상태라는 말이다. 우리가 작은 습관을 하나 바꾸려 해도 종종 관성이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새해 1월이 끝나기도 전에 자책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변화를 정착시키는 방법을 소개한다.
변화가 우리 삶에 정착하고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함께 변해야 한다. 최소한 두 가지 요소가 갖춰질 때 변화가 자리잡기 쉽다. 세 가지 요소는 ①충격에 가까운 깨달음 ②새로운 습관 ③변화를 강화하는 장치다. 하나씩 순서대로 살펴보자.
신라의 원효대사는 불교 선진국 당나라로 유학을 시도했지만 쉽게 길이 열리지 않았다. 여행길에 숲속 동굴에서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갈증을 느끼고 깨어났는데, 마침 어둠 속에서 바가지를 찾아낸 대사는 그 안에 담긴 물을 마시고 마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고, 그가 마셨던 냉수는 썩은 빗물이었다. ‘모르고 마셨을 때는 감로수 같았던 물이 알고 보니 썩은 물’이라는 데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길을 돌이켜 신라로 돌아왔다. 이후 대중에게 바른 마음가짐이 구도(求道)의 시작이라고 설파했다.
우리는 가끔 일상에서 ‘현대판 원효대사’를 만난다. 예전 직장에서는 영업사원인데도 술을 마시지 않는 선배가 네 명이나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선배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크게 웃었다. 사연인즉, 네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신 뒤 음주운전 중 교각을 들이받고서 차를 버린 채 집으로 도망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이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죽음에 근접한 위기는 종종 우리에게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주고, 삶의 변화를 일으킨다.
습관에 대한 통찰이 번뜩이는 책 ≪습관의 힘≫을 쓴 찰스 두히그는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가 오후 3시에 습관적으로 사먹는 초콜릿 쿠키라고 생각했다. 그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 오후 3시면 회사 주변을 걷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오후 3시가 되면 스트레스 많은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동료들과 잡담하는 시간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몇 번의 실험 끝에 결국 습관을 새로운 것으로 교체했다.
두히그는 습관을 구성하는 요소가 단서, 반복적 행동, 보상이라고 말한다. 많은 직장인이 점심식사 뒤에 담배를 피운다. 식사 후 20분 정도의 여유시간이 흡연 습관에 불을 붙이는 단서를 제공한다. 1층으로 내려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벤치에 앉는 행위는 거의 자동으로 진행되는 반복적 행동이다.
해법은 무엇일까. 점심식사 뒤 여유시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오전 시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카페까지 걸어가 진한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고 돌아온다. 니코틴 중독이 심하지 않은 흡연자라면 이 방법으로도 흡연량을 줄이거나 금연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쁜 습관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기존의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강화하는 장치를 만드는 일에는 약간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아유튜브에서 인기를 끈 스톡홀름 지하철의 피아노 계단은 재미라는 요소를 통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승객을 계단으로 유도한다. 피아노 건반 모양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으면 소리가 나는데, 지하철 승객들은 대부분 호기심에 이끌려 이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건강을 위해 계단을 이용하라는 문구는 하나도 없다.
미국의 카이저사우스병원은 환자의 약을 제조하는 간호사가 방문객의 방해를 받지 않도록 ‘투약중’이란 글씨가 적힌 노란 조끼를 입게 했다. 간호사들이 조끼를 입은 지 6개월 만에 투약 실수가 47% 감소했다고 한다.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변화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충격에 가까운 깨달음, 새로운 습관, 변화를 강화하는 장치를 고민해봐야 한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