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더 이상 못 믿겠다"…金 빼가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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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때 맡긴 金 안보여주자 회수 추진
'달러 기축통화시대' 종언 대비 분석도
2차대전때 맡긴 金 안보여주자 회수 추진
'달러 기축통화시대' 종언 대비 분석도
“미국 중앙은행(Fed) 소속 뉴욕연방은행은 독일 정부에도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독일 소유의 금을 보여주지 않았다.”
페테르 가우바일러 독일 기독사회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정부의 기밀 문서는 독일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2차대전 후 글로벌 냉전시대 때 소련의 침공을 우려해 미국에 맡겨 놓은 약 1540의 금을 보여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미국은 극히 일부분만 공개했다는 내용이다.
그 후 독일에는 “해외에 보관 중인 금을 모두 회수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냉전시대는 끝났다며 ‘금 회수 운동’이 일어났다.
○360억달러어치 금 운반 작전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결국 해외에 있는 금의 상당부분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은 전체 금 보유량(약 3400)의 45%를 미국에, 나머지는 영국(13%) 프랑스(11%) 등에 분산해 보관하고 있다. 분데스방크는 이 가운데 프랑스에 맡긴 금의 전부와 미국 보관분의 약 20%를 회수할 계획이다. 16일 브리핑에서 분데스방크 측은 “대내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높이고, 보유하고 있는 금을 필요할 때 즉각 외환으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 대한 독일의 신뢰가 무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가우바일러 의원의 폭로로 “미국이 독일의 금을 가짜 금으로 바꿔치기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독일 감사원까지 나서 “해외에 있는 금의 보관상태를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분데스방크는 여론의 압박이 심해지자 “2015년까지 해외에 있는 금 150을 회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약 674을 2020년까지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해당 가치는 현재 시세(온스당 1600달러)로 360억달러(약 38조원)에 달한다.
○달러 기축통화 시대 끝나나
분데스방크의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미국이 부채한도 증액협상에 실패하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수 있고, 이 경우 독일의 금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의 귀금속 정보제공업체 샤프스픽슬리의 로스 노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이 부도날 수 있다고 독일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인 핌코의 빌 그로스 CEO도 “중앙은행들이 서로 믿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화 붕괴에 대비하는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소 스트래티지이코노믹스의 매튜 린 CEO는 “유로화가 붕괴되고 각국이 자국 통화를 부활시키는 때가 오면 통화가치는 결국 금 보유량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분데스방크의 결정이 기축통화로서 ‘달러 시대’의 종언과 ‘금 시대’의 부활을 알리는 분기점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1965년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달러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미국에 보관했던 금을 모두 회수한 적이 있다. 이후 각국이 앞다퉈 금을 빼가자 결국 미국은 1971년 금태환을 포기했다.
이번 분데스방크의 금 회수 결정이 ‘금태환 포기’와 비슷한 초대형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의 저자인 투자분석가 찰스 고예트는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계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각국은 서류상의 금이 아닌 진짜 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 금본위제
통화 가치를 순금의 중량에 연계하는 화폐제도. 미국은 1944년 브레턴우즈체제를 통해 ‘금 1온스=35달러’로 정하는 금본위제를 시작했다. 달러와 금을 교환하는 것을 금태환이라고 한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달러를 대규모로 찍어내면서 통화 가치가 떨어졌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금태환 포기를 선언했다. 최근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서 금본위제 부활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