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고생을 많이 했다. 음모도 있었지만 잘 참아내 사려 깊은 지도자가 됐다. 자신이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8월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1533~1603·사진)을 롤모델로 꼽고 이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박 당선인은 엘리자베스 1세를 “늘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며 “파산 직전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인물”이라고 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는 간통죄로 참수됐다. 여왕 자신은 21세 때 런던탑에 유폐돼 고초를 겪었다. 부모를 일찍 잃고 은둔했던 박 당선인이 자신의 삶을 이에 대입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결혼하지 않은 것도 닮았다. 평생 독신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을 권유받을 때마다 “이미 국가와 결혼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 작가 앨런 엑슬로드는 저서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에서 그를 ‘준비된 여왕’이라고 묘사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위기 상황에서 항상 뛰어난 중재 능력을 발휘해서다. 그는 25세에 즉위하자마자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중도노선을 걸어 종교 대립을 해소했다. 의회와 타협한 화폐 개혁으로 치솟던 물가도 잡았다. 집권 후반기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해 영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당선인은 2007년까지만 해도 롤모델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말했다. 엘리자베스 1세로 롤모델이 바뀐 데는 시대 상황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오랜 병폐였던 파업에 단호히 대응해 경제 부흥을 이끈 대처 전 총리는 강한 리더십을 상징한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갈등과 분열 해소를 급선무로 인식하면서 ‘중도’와 ‘통합’의 리더십을 보인 엘리자베스 1세를 롤모델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