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1997년 말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2003년에는 카드 대란,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번 새 대통령 역시 전 세계적인 ‘저성장 흐름의 심화’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최근의 저성장 문제는 지속성과 정책 대응 수단의 고갈이란 측면에서 이전 정부들이 부닥친 난관에 비해 한층 더 어려운 문제다.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해법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새 대통령의 임기 내내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편치 않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 모두 금융위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브릭스(BRICs) 국가들도 선진국 수요 부진을 대체할 자체 성장 역량이 부족한 편이다. 당분간 세계경제는 지난 10년간 누렸던 높은 성장세를 보이기 어렵다. 국내적으로도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이르는 가계부채, 부동산시장 침체, 청년실업, 자영업 문제 등이 내수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지난 50여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과거처럼 고성장하기 어렵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연 7~8%는 차치하고 4~5% 성장마저도 힘들어졌다. 우리의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2012년 구매력 기준 GDP)에서 높아지기는커녕 장기적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지금의 한국인이 한국 역사에서 가장 잘 살았던 세대’가 되리란 비관론을 한쪽 귀로 흘려버릴 수만은 없게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뀌었는가.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인구 구조 변화로 노동의 양적 투입 확대가 불가능해진 점이다. 경제활동인구는 1960년 755만명에서 2000년 2213만명, 2010년 2474만명으로 평균 2.30%, 취업자 수는 매년 평균 2.46% 증가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 일하는 사람이 매년 2.5% 가까이 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연간 경제성장률 2.5% 정도가 저절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20~59세 인구 비중은 2013년 전체 인구의 61.6%를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20년에는 58.9%, 2050년에는 42.1%로 하락한다. 인구증가율이 낮을 뿐 아니라 인구 중 생산적인 인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노동 투입이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커녕 도리어 낮추게 될 것이다.


여성과 노인 인력이 생산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경제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을 보다 효율적 부분에 재배치함으로써 이런 한계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성장률 상승 효과가 매년, 그리고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노동력의 추가 투입만으로 성장 활력을 다시 높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투자를 늘려 자본 투입량을 확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경제의 자본생산성은 1990년대 8%에서 크게 하락한 3~4% 정도로 추정된다.

자본생산성이 낮은 상태에서 대규모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같은 일종의 ‘거품 붕괴’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과 자본의 양이 아니라 이들의 생산성을 올리는 ‘혁신’이 문제다. 세계 역사에서 단순히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을 확대해 당대 최고의 선진국으로 뛰어오른 나라는 없었다. 같은 노동과 자본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하도록 기술과 지식에서의 혁신이 수반돼야 했다. 영국의 산업혁명, 네덜란드의 청어 염장 기술과 주식회사 제도, 독일의 기계·화학산업, 미국 대량생산 기술과 항공·우주·컴퓨터기술 혁명 등이 그러했다.

혁신에 의한 성장은 당연히 어렵다. 어느 나라가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남의 혁신을 모방하고 따라만 해서는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있다. 선진국의 성장 경험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으나 이제는 우리만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됐다.

혁신은 자본 투자와 노동 투입처럼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계획적으로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다만 혁신이 나타났던 곳들의 공통점에서 단초를 얻을 수는 있다. 우선 사회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혁신은 다양성과 이질성을 존중하는 곳에서 나타났다. 성이나 인종, 국적, 학력, 경력을 넘어 다양한 생각과 경험, 철학과 신념이 공존해 서로 섞일 때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고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 가능하다.

둘째,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셋째, 경쟁과 개방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가 살 길은 대외개방을 통한 기회의 선점과 경쟁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있다. 일본의 위기는 어쩌면 환경 변화 탓이 아니라 내부를 지향하는 ‘갈라파고스적’ 성향 탓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정치권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가 혁신의 동력인 희망과 열정을 살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지난 대통령들에게 닥친 어려움들이 급성질환이라면 차기 대통령이 마주칠 저성장은 어쩌면 만성질환에 가깝다. 재정확대, 통화팽창 등의 처방이 일시적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본질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새 대통령은 여성과 고령인구의 기여를 높이고 규제 완화로 투자의 병목을 해소하는 한편 ‘혁신에 의한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우리 경제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확충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