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창업한 '레노버' 대박…전통 강자였던 IBM마저 삼켜…'중국 PC 신화' 살아있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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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촨즈 <레전드홀딩스 회장>
혁신에 목말랐던 사나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문화혁명…몇년간 농장 일하다 컴퓨터硏 취직
나이를 잊은 도전
뒤늦게 찾아온 사내벤처 창업 기회…2년 만에 286컴퓨터 자체 생산 성공
中 영향력있는 기업인 2위
작년에 경영 일선서 물러났지만 IT부터 농업까지 130여개社 투자
혁신에 목말랐던 사나이
대학 졸업하자마자 문화혁명…몇년간 농장 일하다 컴퓨터硏 취직
나이를 잊은 도전
뒤늦게 찾아온 사내벤처 창업 기회…2년 만에 286컴퓨터 자체 생산 성공
中 영향력있는 기업인 2위
작년에 경영 일선서 물러났지만 IT부터 농업까지 130여개社 투자
최근 대기업 인사에서 30대 임원들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그런 소식을 접하는 40대 직장인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든다.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든 것일까. 류촨즈(柳傳志·69) 레전드홀딩스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세계 2위 정보기술(IT) 회사로 성장한 레노버(聯想)를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살이었다. 레노버 회장직을 내놓으며 기업 투자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시기는 환갑을 넘어서였다.
류 회장이 단순히 기업가를 넘어 ‘중국 IT업계의 교부(敎父·최고의 스승)’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것은 나이를 잊은 도전 덕분이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철지난 것처럼 보이는 기업가의 애국심을 강조한다. ‘뜻을 전한다’는 의미를 가진 자신의 이름처럼 사업 노하우를 후배 기업인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레노버 회장에서 물러났는데도 올해 5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실시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조사에서 2위에 오른 이유다.
◆40세에 사업에 뛰어들다
류 회장은 1944년 중국 장쑤(江蘇)성 전장(鎭江)에서 태어났다. 1966년 시안전자과학기술대를 졸업하자마자 문화혁명을 맞았다. 수년간 집단농장에서 농사일을 하다 1970년 베이징 중국과학원 산하의 컴퓨터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부임하며 과학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연구자의 길을 걷던 중 40세 때인 1984년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았다. 1980년대 초부터 베이징 중관춘 일대에 IT업체들이 속속 생기면서 연구소 소장이 일종의 사내 벤처 설립을 추진한 것이다.
그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회사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레노버의 전신인 ‘컴퓨터기술연구소 신기술발전공사’의 출발이었다. 10명의 동료 연구원과 연구소 경비초소로 쓰이던 23㎡짜리 벽돌건물이 그에게 주어진 업무공간의 전부였다.
그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문화혁명이 시작돼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마음이 분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개방으로 외국 문물이 소개되면서 그간 연구해온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도 알게 됐다. 그러던 차에 새로운 기회가 왔고,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외국 부품을 들여와 컴퓨터를 조립생산하고 해외 PC를 수입해 판매하기도 했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 자체 PC를 만들고 싶었지만 중국의 계획경제체제로 국가가 정한 제품만 만들어야 했던 탓이다.
돌파구는 홍콩이었다. 1988년 30만홍콩달러(약 4000만원)를 갖고 홍콩으로 가 PC 개발에 매진했다. 1990년 마침내 286컴퓨터를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류촨즈와 레노버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1996년 PC 가격전쟁을 주도하며 경쟁업체들을 주저앉히고 중국 내 1위 컴퓨터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2005년에는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입고 중국 내 IBM 위탁판매상 회의에 참석한 지 20여년 만의 일이었다.
◆기초를 중시하는 경영 철학
중년에 시작한 사업이지만 류촨즈는 필요할 때마다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기술만 믿고 창업했다가 실패한 다른 연구원 및 학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철저히 사업가가 됐다. 그는 “기술자들은 무역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무역을 알고 시장을 이해해야 제대로 된 목표가 생기고, 문제를 뚫고 나갈 힘이 키워진다”고 말한다.
연구원 출신 최고경영자(CEO)로서 기초를 중시하는 것은 다른 중국 기업의 CEO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이다. 그는 자주 후배 기업인들에게 “기업의 연구·개발(R&D) 역량은 막대기를 세우는 것처럼 빨리 올리기보다는 성(城)처럼 한층 한층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철학은 휴렛팩커드(HP) 등 선진 기업을 따라잡을 때 큰 도움이 됐다. “한번은 HP의 레이저프린터를 쫓아가기 위해 비슷한 성능의 제품을 개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해당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HP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만들며 다시 앞서 나갔다. 레노버는 곧 다른 기능을 갖춘 프린터를 개발해 따라잡을 수 있었다. 단순히 HP의 제품을 복제하려고 했다면 시간은 더 빨랐겠지만, 이 같은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역설하는 ‘관리 3요소’ 경영도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소규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전략을 세운 뒤 전체 기업을 끌고 오는 것이다. 류 회장은 “당장은 힘들고 전체가 따라오기 어렵더라도 목표를 정한 뒤 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눈앞의 이익에 흔들려 사업 전개가 산만해질 수 있다”고 충고한다.
◆투자가로 제2의 인생
류 회장은 IBM PC부문을 인수한 직후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레노버가 어려움에 처하자 2009년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3년 내에 회사를 흑자전환시키겠다”고 밝힌 그는 약속을 실현한 작년 다시 CEO 자리에서 내려왔다.
경영에서 물러난 뒤에는 레노버의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 회장으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앞서 2001년 레전드캐피털을 설립하며 투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70에 가까운 나이지만 레전드캐피털 투자위원회에 참여하며 투자 결정을 주도한다. 여러 건의 투자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2006년 투자해 지난해 영국 런던증시에 상장한 제약회사 셴셩(先聲)약업이 대표적이다. 투자 당시 2억1000만위안(약 363억원)이던 지분 가치는 2억달러(약 2154억원)로까지 불어났다. 레전드캐피털은 130억위안(약 2조24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며 IT부터 농업까지 130여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류촨즈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기업가에서 투자가로 완전히 변신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에 대한 투자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한 만큼 자본 유치가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중국에는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많다. 이들을 지원해 제2, 제3의 레노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기업인으로서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