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오랜만에 미국에서 칭찬받고 있다. ‘혁신 없이 소송만 남발한다’ ‘절세의 대가다’ ‘투자는 외면하고 해외에 현금만 쌓아놓고 있다’ 등 이 회사에 쏟아졌던 비판이 쑥 들어갔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에서 만들고 있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년부터 미국에서도 일부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덕분이다. 애플의 ‘리쇼어링(reshoring)’ 선언이다.

리쇼어링은 해안(shore)을 떠나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이다. 미국 기업들의 리쇼어링 바람은 이미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 월풀 캐터필러 오티스 등 상당수 기업들이 유턴 계획을 내놨다.

쿡 CEO는 내년 매킨토시 미국 공장에 1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2012회계연도(2011년 10월~2012년 9월)에 벌어들인 순이익 417억달러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킷’ 수준이다. 미국인들이 새삼스럽게 흥분하는 것은 애플의 상징성 때문이다.

‘애플 효과’ 기대하는 미국

미국 제조업의 대표격인 애플의 결정인 만큼 이번엔 파급효과가 상당하지 않겠냐는 게 미국인들의 기대다. 본격적으로 리쇼어링의 득실을 따져보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란 희망이 깔려 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3D로보틱스의 크리스 앤더슨 CEO는 CNN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이 온다면 ‘우리도 옮겨올 수 있다’는 생각이 기업인들 사이에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서 자동차 담당 기자를 지낸 칼럼니스트 미셰린 메이너드는 최근 미국 남부 일대를 6400㎞나 달리며 자동차 공장 9곳을 방문했다. 차 업계의 최신 동향을 확인하려고 찾은 9개 공장이 모두 미국 회사가 아니란 점에 그는 서운해 했다. 그러던 차에 애플의 컴백 소식을 들은 그는 경제잡지 포브스에 곧바로 기고문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애플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다시 멋진 단어로 만들 수 있을까. (리쇼어링 선언으로) 애플은 미국 제조업의 대사(大使)가 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제조업의 주도권을 일본과 한국 중국 등에 차례로 넘겨준 미국인들의 안타까움과 반가움이 잔뜩 묻어난다. 스스로를 ‘공장 마니아’라고 소개한 그는 애플이 제조업 사관학교를 만들어 ‘메이드 인 USA’ 부흥의 선두에 서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까지 했다.

부러운 미국인들의 ‘응원’

공장 몇 개 세운다고 당장 미국의 제조업이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20년 가까이 해외 아웃소싱에 의존해오던 회사들이 부품까지 전부 미국 내에서 조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애플이 되돌아와도 위탁생산업체인 폭스콘 미국 공장의 인력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벌써 나온다. 공장 자동화로 인해 고용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턴’ 기업에 감세 혜택을 주겠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당근’에 기업들이 성의를 표시하는 정도라고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의 호들갑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리쇼어링 현상의 원인에서 한국 기업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의 인건비까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비싼 유가로 물류비 부담도 크다. 어지간한 공산품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기업을 때려야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더 모은다고 생각하는 한국 정치권을 생각하면, 본국으로 귀환하는 애플에 보내는 미국인들의 응원과 ‘오버액션’이 부럽다.

박해영 국제부 차장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