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행 중인 후보자들의 TV토론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지지율 1%도 안 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인신공격과 남쪽 정부 운운하는 궤변에 가까운 발언으로 토론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하지만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는 토론의 기본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것은 큰 허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기계적인 형평성을 강조한 관련 법이나 경직적인 토론 규칙은 토론회의 효용과 품격을 크게 떨어뜨렸다. TV토론에 동문서답의 엉뚱한 이야기나, 자극적 발언이 난무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마나한 코미디물로 전락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TV토론이란 미디어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 TV토론은 다른 영상물과 마찬가지로 선택되어 비쳐지는 것만 보고 듣는다는 일방성을 갖는다. 쌍방향의 소통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해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한다는 본래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만들어지거나 꾸며낸 이미지들의 대결이 될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비쳐지는 영상 이미지를 통해 후보자의 총체적인 식견과 비전,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까지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내용물도 모른 채 잘 포장된 상자의 겉모습만 보고 어느 것이 더 나은 선물인지 고르라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조작된 이미지를 절대화하는 이른바 ‘무대의 오류’가 발생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각본대로 연기한 배우를 실재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비쳐진 이미지가 본질을 대체하는 것을 우리는 굳이 무대의 오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에서 변학도 역으로 나온 사람들이 관객들의 미움을 받는 것도 그렇고 악역 배우를 광고모델로 잘 쓰지 않는 것도 ‘무대 오류’의 하나다. 유창한 언변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식견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고, 이빨 사이로 새는 발음을 이유로 문재인 후보가 비논리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특정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역시 ‘무대의 오류’라고 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연설솜씨나 의상과 넥타이 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정치일 수도 없다. TV토론은 자칫 반지성의 천박한 대중민주주의를 여는 통로가 될 뿐이다. 질서정연한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정치, 즉 시스템화된 정치의 틀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뒤죽박죽 TV토론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