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샌디’ 여파로 수백만명이 정전 상태에서 대선(11월6일)을 치러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전력업체에 긴급 복구를 주문했지만 정전 지역이 워낙 넓어 제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수백만명이 전기 공급이 끊긴 가운데 투표장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이날 보도했다.

샌디가 할퀴고 간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오하이오주 등은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 간 지지율이 비슷한 ‘경합주’여서 대선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명 정전 상태로 투표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따르면 뉴욕 뉴저지 버지니아 등 17개주 820만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샌디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 북동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양의 눈을 뿌려 정전 지역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전력회사 경영진들과 전화 통화를 갖고 “전기를 다시 공급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며 신속 복구를 주문했다. 하지만 전력회사들은 최소 3~4일, 일부 지역은 10일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당국은 정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조기 투표와 선거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버지니아주는 북부의 21개 투표소를 29일 잠정 폐쇄했다가 30일 12개를 열었다. 주 전체 인구의 10%인 약 130만명이 정전 피해를 본 펜실베이니아주의 론 루먼 주국무장관 대변인은 “많은 투표소가 무용지물이 될 것 같지는 않다. 1주일 안에 정상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요동치는 대선 판세

상황은 전국 유권자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는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허리케인 대비와 피해 복구를 진두지휘하면서 리더십을 발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찬스를 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롬니는 경합주에서 막판 총력전을 펼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언론들은 허리케인이 막판 판세를 흔드는 ‘10월의 이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공화당의 대표적인 ‘오바마 저격수’로 꼽히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태도를 180도 바꿔 주목을 끌었다.

그는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허리케인 대응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잠재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크리스티 주지사의 발언이 롬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오바마는 31일 뉴저지를 방문해 피해 복구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재난 복구가 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 롬니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FEMA를 폐쇄하겠다고 한 공약도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뉴욕타임스는 롬니의 FEMA 폐쇄 공약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틀간 선거유세를 중단한 롬니는 31일 샌디 피해가 없는 플로리다에서 유세를 재개한다.

IHS글로벌인사이트는 샌디 여파로 미국의 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250억달러 줄어 성장률이 최대 0.6%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틀간 휴장했던 뉴욕증시는 31일 개장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