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오게 마련이에요. 그때 주저앉으면 안돼요.”

지난 9월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김란숙 씨(45). 세 살 때 갑자기 찾아온 소아마비로 하반신 불구가 됐다. 아홉 살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가난과 결핍이 숙명처럼 곁을 붙어다녔다.

고난은 계속됐다.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지만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선 모든 잘못을 김씨에게 돌렸다. 결국 1998년에 이혼을 결정했다.

그때 큰 아들이 8세, 작은 아들은 5세였다. 남편이 그의 명의로 빌려쓴 은행 빚 2000만원도 감당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죽을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두 아들이 눈에 밟혔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을 보는 어느 순간, 어두운 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80여만원으로는 이자도 갚기 버거웠다. 포장마차, 기사도우미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생활했다. 현재 이사직을 맡고 있는 광주미래신협과의 인연도 이때 맺어졌다. 광주미래신협은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곳이다. 신협은 그에게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1000만원을 선뜻 대출해줬다.

김씨는 “시각장애인인 신협 이사장님이 아무 담보도 없는 저에게 돈을 빌려줬다”며 “그 돈으로 장사를 해 2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협에서 장애인의 경제 활동과 자산 관리 업무를 돕고 있다. 상근직도, 보수 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자활의 길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활을 처음 잡은 것은 2005년이다. 어느 날 광주 염주체육관을 찾은 것이 계기였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장애가 심한 이들이 양궁을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장비는 광주 장애인 양궁협회가 제공했다.

단박에 재능을 드러냈다. 훈련 5개월 후에 열린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듬해엔 국가대표가 됐다. 2008년부터는 일과 운동을 병행할 수 없어서 운동에 올인했다. 김씨는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억척같이 훈련했다”고 말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큰 아들이 엄마가 양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보탠 것도 큰 힘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런던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아들을 끌어안고 참 많이 울었어요. 돌아보면 손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제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들이 솟구쳐요. 그건 바로 희망입니다.”

김씨가 끌어안은 희망은 우리 삶을 지켜주는 보석이다. 오랜 시련을 거쳤기에 더욱 반짝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김씨처럼 희망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눈앞에 닥친 고난을 뛰어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특히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엔 요즘 같은 불황기가 더욱 암울하게 다가온다. 빈곤의 대물림에 대한 공포는 희망의 상실, 미래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부와 사회적 지위의 세습’이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고 과거 계층 이동의 통로 역할을 했던 교육이 이젠 오히려 계층 이동을 차단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대선 주자들이 양극화 완화를 위해 저마다 ‘기회의 균등’을 외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빈부격차 심화나 계층 이동을 차단하는 사회적 여건을 단시일 내 해소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어차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소설가 복거일 씨는 “국가나 정부가 개인의 고단한 처지를 일일이 보살피기는 어렵다”며 “결국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은 현재 시점의 노력과 의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소 야박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권대중 계명대 철학과 교수도 비슷한 얘기다. “사회 시스템의 적정성과 형평성을 따져보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건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회 탓만 하면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자세가 없으면 결코 현실을 바꿀 수가 없는 거죠.”

고여 있는 생각과 판단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동물학자들은 어린 코끼리의 뒷다리에 족쇄를 채운 뒤 2m 길이의 사슬에 연결해놓으면 그 코끼리는 성년이 돼서도 2m 이상을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타성은 무서운 것이다. 스스로 미래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미래는 열려 있다. 조금 더 손쉽게 또는 어렵게 달려나갈 뿐이다. 그동안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기회를 맞이하지 못했다고,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법은 없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는 땀과 노력만이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다.

김주완/민지혜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