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외환시장에서 리알화 가치가 연일 폭락하고 있다. 리알화 가치 폭락과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수도 테헤란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들이 핵무기 개발 포기를 강요하며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자국 경제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란 경제가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달러 사재기가 가치 폭락 원인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이란 외환시장(환전소)에서 리알화 시장환율은 달러당 3만6000리알까지 치솟았다. 1주일 전 달러당 약 2만5500리알이던 것과 비교하면 통화가치가 약 40% 떨어진 것이다. 연초 대비 리알화 가치는 약 80%나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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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중앙은행(CBI)이 정한 고시환율도 지난달 17일 달러당 1만2215리알에서 이날 1만2559리알까지 올랐다. 통화가치로 따지면 약 2주간 9% 추락한 것이다.

최근 리알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해 원유 수출길이 막히자 이란 내에서 달러 품귀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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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악화에 민심 폭발

민심은 폭발하고 있다. 이날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는 환전상과 상인 수백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현지 일간 내셔널에 따르면 전날 이란 노동자 1만명은 인플레이션에 항의하는 청원에 공동 서명해 노동부에 제출했다. 이란에선 지난 7월에도 닭고기 값이 두 달 새 3배 넘게 오르자 정부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란 중앙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이란의 공식 물가상승률은 21%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60%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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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전날 방송 연설에서 리알화 가치 폭락이 투기꾼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환율을 조작한 일당은 총 22명으로 곧 체포될 것이며 미국과 국내 불순분자들이 심리전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방의 이란산 석유 금수 조치로 석유 수출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이란의 원유 수출량이 올 2월 이후 6개월간 약 4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원유 수출은 이란 정부 재정수입의 90%, 외화 수입의 80%를 차지한다. 실업률이 28.6%에 달할 정도로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경제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국 기업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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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에 따르면 이란과 교역 중인 한국 기업은 3200개가량이다. 석유 수입업체들은 최근 리알화 가치 폭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란 환율제도의 특성상 무역을 할 때 적용되는 환율은 달러당 1만5000리알로 고정돼 있고, 한국 기업들은 결제 수단으로 원화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중동산 원유를 포함한 모든 원유는 싱가포르 등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거래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3중 환율'

생필품 수입땐 고시환율
원유 수출입엔 무역환율
사설환전소는 시장환율

이란의 환율제도는 공식적으로는 고정환율제지만 실제로는 3중 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올 1월 계좌동결, 은행거래 금지 등 서방의 경제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외환보유액에 압박이 생기자 도입한 것이다.

이란은 올 1월 이전에는 공공부문에서는 이란중앙은행(CBI)이 정하는 고시환율을 적용하고, 환전소 등 민간부문은 변동환율을 적용하는 2중 환율제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1월 이후 기본 생필품과 식료품 수입에는 고시환율을 적용하고, 원유와 원자재·중간재 수입 및 수출에는 달러당 1만5000리알의 무역환율을 적용하고 있다. 사설 환전소는 계속 변동환율제로 운영된다. 최근 리알화 가치 폭락은 환전소에서 발생한 것이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