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부문에서 벌어지던 한·일전이 생활가전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과 LG에 TV 챔피언 자리를 내준 일본 업체들이 가전 분야를 강화하면서다. 이들은 절대 강자가 없는 이머징마켓에 가전 생산라인을 늘리며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이에 맞서 삼성과 LG도 신흥시장 마케팅을 강화해 양국 간 ‘가전 대전’이 예고되고 있다.

○브릭스에 공 들이는 일본

4일 업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지난 8월부터 브라질에 연간 20만대가량을 양산할 수 있는 냉장고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또 80억엔가량을 투입해 베트남 하노이에 냉장고와 세탁기 공장을 추가 건설하고 있다. 연 40만대 규모의 냉장고 공장은 10월부터, 세탁기 공장은 내년 4월부터 각각 생산에 들어간다. 내년 중 인도에 에어컨과 세탁기 공장을 신설할 방침이다.

세계 1위 에어컨업체인 일본 다이킨은 중국 시장 공략에 힘쏟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뿐 아니라 중저가 에어컨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4월 중국 쑤저우에 보급형 에어컨 공장을 지었다. 연 150만대인 이곳의 생산 능력을 내년 중 300만대로 늘릴 방침이다.

2010년 미국 캐리어를 제치고 세계 1위 업체가 된 뒤 중국 에어컨 업체인 커리와도 합작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월엔 미국 가정용 에어컨 업체 굿맨을 37억달러(약 4조2000억원)에 인수해 독주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신흥국 가전 사업을 남는 장사로 판단하고 있다. ‘탈 일본’을 통해 지긋지긋한 엔고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경제 성장으로 브릭스 국가 소비자들이 고급 냉장고와 에어컨을 사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도 호재다.

TV나 휴대폰과 달리 글로벌 강자가 없는 백색가전 시장의 특수성 역시 일본 업체들이 이머징마켓에 공을 들이는 요인이다.

이런 덕에 파나소닉은 지난해 7700억엔(8조6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적자를 냈지만 백색가전 부문에선 800억엔(약 1조1000억원)의 흑자를 거뒀다. 다이킨도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지난해 600억엔(약 85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LG전자는 에어컨과 냉장고 사업 등에서 3600억원가량 벌었다.

○LG·삼성도 해외로 해외로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신흥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작년 11월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연 100만대 규모의 세탁기 생산라인을 신설했다. 폴란드 공장의 냉장고 생산량은 연 30만대에서 100만대로 늘렸다.

중국 난징에 있는 세탁기 공장 생산 규모도 280만대에서 300만대로 확대키로 하고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에어컨 부문에선 작년 3월 LS엠트론의 공조사업을 인수해 취약했던 상업용 냉난방 분야를 보완했다.

삼성전자는 폴란드 가전업체 아미카 공장을 인수해 2010년 2월부터 세탁기와 냉장고를 양산한 뒤 지난해 1억달러 이상을 들여 생산라인을 늘렸다. 작년 3월에는 베트남에 청소기 공장도 만들었다. “신흥시장 공략 등을 통해 2015년 글로벌 생활가전 1위에 오르겠다”는 게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의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일본 외에 중국과 유럽 가전업체들도 신흥 시장에 생산라인을 늘리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