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곤 르노닛산그룹 회장의 또 다른 도박일까. 닛산이 3000달러가량(약 334만원)에 살 수 있는 초저가 차량을 내놓는다. 31년 전인 1981년 단종한 소형 승용차 ‘닷선(Datsun)’을 2014년 부활시켜 신흥국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다.

닷선510 모델의 경우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BMW’로 불리던 인기 차종이었다.

곤 회장은 “새로운 닷선은 신흥시장 판매 차량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반면 무모한 초저가 전략은 기존의 브랜드 이미지만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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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선의 부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닛산의 신흥시장 전용 브랜드인 닷선의 최저가가 300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닛산의 최저가 차량인 멕시코 내수용 ‘쓰루’(8500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옵션을 모두 적용해도 신형 닷선은 5000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전했다. 닛산은 닷선 브랜드를 2014년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에 출시할 예정이다.

일본 자동차업체가 신흥국 전용 브랜드를 내놓는 것은 닛산이 처음이다. 급성장하는 신흥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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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포화상태인 선진국 시장보다는 떠오르는 신흥국에 집중,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닛산의 지역별 판매 대수 증가율은 신흥시장이 29.5%로 예상돼 일본 5.3%, 중국 8.4%에 비해 훨씬 높다.

곤 회장이 닷선 카드를 꺼내든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닷선은 1933년 회사 창업 때(당시 회사 이름은 닷자동차)부터 1981년 닛산 브랜드로 통합되기 전까지 사용됐던 소형차 브랜드다. ‘튼튼하고 경제적인 차’라는 게 당시 시장의 평가였다. 닷선이 부활하면 닛산은 ‘닛산’,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와 함께 가격대별로 3개의 브랜드를 갖게 된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란 곤 회장은 신흥국 시장 확대를 일종의 ‘숙원’으로 여기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곤 회장은 “새 닷선은 닛산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올릴 비밀병기”라며 “닛산의 새로운 액셀러레이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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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선의 부활이 철강제품 경쟁 입찰제를 도입해 일본 철강업계를 흔든 제2의 ‘곤 쇼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닷선 부활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프랑수아 반콘은 “자동차 생산 방식을 혁신적으로 뜯어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닷선의 초저가 전략이 기존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랄프 캄박 자동차 전문 컨설턴트는 “닷선은 과거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브랜드인데 초저가로 다시 출시되면 닷선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 내 반대도 만만치 않다. 낮은 가격에 이윤을 내기 위해선 자동차 사양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차량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자동조작 기능은 대폭 축소할 예정이다. 에어백 같은 안전장치도 장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닛산 관계자는 “기본적인 사양만 갖춘 차량이 될 것”이라며 “안전 기준이 높은 선진국에선 판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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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업체들의 반응 역시 부정적이다. 후노 유키토시 도요타자동차 부사장은 “가격만 싸다고 신흥국에서 성공한다는 생각은 큰 실수”라며 “사람들은 자랑할 수 있는 차를 타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닛산의 전기차 리프의 판매 실적도 부진한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무모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기 히데오 전 닛산 북미지사 부사장은 “리프로 큰 실수를 했던 곤 회장이 또 다른 실수를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