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앞에서 불량 냉장고 부수는 단호함…농민 위해 '고구마 세탁기' 만드는 세심함
불량품 만들면 벌금
생산자들에게 품질 책임감 강조…中서 브랜드파워 10년째 1위 지켜
고객의 속내를 읽어라
용량 1.5㎏ '꼬마세탁기' 출시…수도·전기료 걱정하던 고객 유혹
프리미엄 가전시장 도전
투명한 55인치 OLED TV 개발…작년엔 日산요 백색가전 인수
1984년 12월, 중국 전자업체 하이얼(海爾)의 전신인 칭다오냉장고공장(淸島電氷箱總廠)은 파산 위기에 놓였다. 연이은 적자로 전임 공장장 3명이 불명예 퇴진한 뒤였다.
칭다오가전공사에서 일하던 35세의 장루이민(張瑞敏)이 공장장으로 급파됐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한숨부터 나왔다. 직원들은 공장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봤고, 비품과 자재를 마음대로 훔쳐갔다. 정상적 방법으론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하고 새로운 관리규정을 발표했다.
직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날 물건을 박스째 들고 나가는 직원도 있었다. 장 공장장은 그 직원을 바로 해고했다. 그제야 직원들은 ‘공장장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이후 하이얼의 기업 경영은 조금씩 질서를 잡아나갔다.
이렇게 변화를 시작한 하이얼은 글로벌 가전업체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베이징유명브랜드자산평가회사에서 발표한 중국의 브랜드가치 순위에서 하이얼은 908억위안(약 16조원)으로 10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올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을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3위로 꼽았다. 일본 니시닛폰(西日本)신문은 “미국에 잭 웰치가 있고 일본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있다면, 중국에는 장루이민이 있다”고 평가했다.
◆“결함이 있는 제품은 모두 불합격”
침몰해가던 하이얼이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장 회장의 무결점 제품을 향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그는 한 고객으로부터 ‘하이얼 냉장고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항의편지를 받았다. 즉시 창고로 가서 제품을 검사했고, 76대의 냉장고에 각종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임원들은 불량 냉장고 처리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하나는 공장에서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자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정부 관리들에게 줘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냉장고 76대를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부수도록 지시했다. 직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냉장고 한 대 가격은 800위안 정도로, 한 달에 40위안을 버는 직원들이 2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때의 금액과 맞먹었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직원들에게 “결함이 있는 제품은 모두 폐기처분한다”며 품질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또 “앞으로는 제품을 1~3등급으로 나누지 않고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나눠 합격한 제품만 시장에 내놓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불합격한 제품에 대해선 생산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본인도 냉장고 불량에 대해 한 달치 월급을 벌금으로 내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고객 맞춤형 제품’으로 승부
하이얼의 성공이 단순히 질좋은 제품의 생산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장 회장은 세계 유명 가전 메이커들이 모두 진출해 있는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히 ‘고객 맞춤형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7년 10월 쓰촨(四川)성으로 출장을 간 그는 “하이얼 세탁기는 배수관이 잘 막혀 사용하기 어렵다”는 고객의 불만을 듣게 됐다. 조사 결과, 그곳 농민들이 세탁기를 이용해 고구마나 무 등을 씻는 바람에 껍질과 흙이 세탁기의 배수구를 막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직원들은 농민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장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고객의 어려움은 우리의 과제”라며 “고구마를 씻을 수 있는 세탁기를 만들자”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6개월 뒤 출시된 하이얼의 ‘고구마 세탁기’는 초기 물량 1만대가 하루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그는 종종 “비수기라는 생각이 있을 뿐, 시장에는 비수기가 없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고객의 필요에 잘 맞춰 상품을 개발하면 언제든 제품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장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세탁기 판매량이 매년 5~8월 감소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세탁기를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과 반대되는 결과여서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직원들은 시중에 나온 세탁기들의 용량이 5㎏ 정도로 여름에 셔츠 한두 벌, 양말 몇 켤레 등 가벼운 옷을 세탁하는 데 쓰기에는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소비자들이 세탁기를 사용하기에는 물과 전기가 낭비된다고 생각해 판매가 부진했던 것.
하이얼은 1997년 여름 연구 끝에 ‘꼬마신동’이라는 세탁기를 출시했다. 이 세탁기는 용량이 1.5㎏로 작고 물높이도 3단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양이 작은 빨래도 알뜰하게 세탁할 수 있었다. 비수기였던 중국의 세탁기 시장은 급격히 달아올랐다.
◆현지화 전략으로 세계 시장 출사표
현재 하이얼은 전세계에 10개의 연구·개발(R&D)센터, 24개의 생산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160여개국에 ‘하이얼’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한다.
중국 제조업체들은 보통 외국에서 유명 브랜드와 설계도를 들여와 생산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장 회장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이런 생산 방식으로는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과감히 고유 브랜드로 수출을 계속했다. ‘외화를 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수출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이얼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선난후이(先難後易)’라는 수출 전략을 선택했다. 처음에 선진국 시장에서 인정받아 높은 신용을 쌓은 뒤 개발도상국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이다. 냉장고를 수출할 첫 나라는 원천 기술을 들여온 독일로 정했다.
독일에서 기술 표준을 획득하고 냉장고 판매가 늘기 시작하자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다른 나라의 수출도 쉽게 진행됐다. 장 회장은 이후 미국 시장 공략에 주력했다. 1999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첫 해외 생산공장을 세웠다. 장 회장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선택한 방식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현지화를 통해 중국 제품에 대한 해외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비관세 장벽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이얼은 현지에서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해 판매했다. 자금과 인력 역시 현지에서 구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하이얼 디자인센터를 만들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생산 공장을, 뉴욕에 판매본부를 두는 식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생산 공장의 경우 직원 200여명 중 칭다오 본사에서 파견한 사장과 재무부 팀장을 제외한 대부분은 미국인을 채용했다. 하이얼은 와인을 차갑게 보관할 수 있는 ‘와인냉장고’가 큰 인기를 모으며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에 안착했다. 200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하이얼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도로를 ‘하이얼로(路)’로 명명했다.
장 회장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년 7월 하이얼은 일본 산요전기의 백색가전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하이얼이 이번 인수로 비교적 경쟁력이 약했던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투명한 55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선보이며 첨단 가전제품 시장에도 도전장을 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