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살고 있는 이모씨(62)는 지난해 11월 주민등록등본을 뗐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소가 경남 하동군 북촌면으로 옮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북촌 면장에게 따지자 ‘지방교부세를 받으려고 전입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그제서야 몇 달 전 하동군 향우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지인이 “인적사항을 한 달만 빌려 달라. 한 달 뒤에는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 놓겠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그는 “확인해 보니 하동군 향우회가 동원돼 나처럼 위장 전입한 사람이 3000여명에 달하더라”고 전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인구를 늘려 지방교부세 등 국가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해 조직적으로 위장 전입을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씨의 사례와 같이 일부 주민은 사전 동의도 없이 주소가 옮겨진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8일 하동과 전북 진안, 강원 양구, 충북 괴산 등 4개 군의 지자체 공무원이 주민·군인 등과 공모해 4000여명의 위장 전입을 주도한 사실을 적발하고 사건을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국방부 등에 통보했다. 지자체가 위장 전입을 주도한 이유는 인구가 감소하면 행정조직 축소와 함께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다른 선거구에 합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 인구 상한은 10만4000명이다. 반면 인구가 늘어나면 1인당 약 100만원의 지방교부세를 더 받는다.

권익위 관계자는 “위장 전입을 통해 지자체는 지방교부세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조직 축소·선거구 통폐합 등을 피할 수 있고, 주민들은 지원금을 부당 수령할 수 있는 등 양측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과 조직적인 위장 전입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하동군은 인구 유입을 장려하기 위해 2011년 소속 읍·면으로 주소지를 옮긴 전입자 636가구에 총 2억6000여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같은 해 7~9월 전입한 3092명 가운데 75.2%인 2324명이 전입한 지 3~5개월 만에 원래 주소지로 되돌아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소가 옮겨진 이씨는 “지자체가 조직적으로 국민들의 정보를 훔쳐 국민의 세금을 빼돌린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동군은 특히 조직적인 위장 전입 사실을 신고한 사람들에게 묵인해 달라며 식사 접대와 금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북 진안군은 지난해 12월 주민이 총 430명 늘어났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305명이 등록한 거주 지역에 살지 않았다. 진안군 공무원들은 직접 위장 전입 신고서를 작성해 인구를 늘렸다. 심지어 다른 곳에 살고 있는 11명을 1명의 공무원 주소지로 옮기기도 했다.

강원 양구군은 인구 확보를 위해 군인들을 동원했다. 양구군 소속 공무원이 2011년 7~8월 사이 직접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 333명을 위장 전입시켰다. 같은 기간 이 지역에서 증가한 인구 346명의 96%가량을 차지하는 비율이다.

지난해 ‘내 고장 주민등록 갖기 운동’을 벌인 충북 괴산군은 공무원을 포함한 약 60명이 관공서, 마을 이장 집, 절, 식당 등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권익위는 지자체의 위장 전입 사례가 몇몇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주소는 농지 취득, 주택 입주자 선정, 토지 보상, 병역관계 및 농어촌 특별전형 등 국민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중요 정보”라며 “위장 전입 행위는 타인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불법적인 위장 전입을 조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권익위의 자료를 전달받는 대로 해당 지자체에 소명을 요구할 방침이다. 경찰 수사와 별도로 소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감사에 나서는 등 진상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경찰조사나 진상조사 결과 지자체 주도로 불법 위장 전입이 이뤄졌다고 판명나면 관련자에 대한 징계 조치와 부당하게 지급한 지방교부세를 환수할 예정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위장 전입이 이뤄졌다면 해당 지자체에 ‘기관경고’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며 “위장 전입을 주도한 공무원들도 가담 정도에 따라 적절한 징계를 내리라고 단체장에게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등록법 제37조 제3호는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수영/김태철 기자 delinews@hankyung.com

■ 지방교부세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서비스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국세 수입 가운데 일정한 비율로 지자체에 지원하는 금액이다. 행정 수요에 충당할 재원이 부족한 지자체를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것. 공무원 수, 인구 수, 가구 수, 노령인구 수, 행정구역 면적, 자동차 대수 등의 기준에 따라 지급액을 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