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율촌은 미국의 한 건축 설비업체를 대리해 관련 산업분야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법률 의견을 내고 있다. 이 업체는 율촌에 “건축 설비 분야 규제 강화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점을 한국 정부에 설득해 달라”고 요청했다. 율촌은 해외 사례와 국내 판례 등을 기초로 보고서를 만들어 관련 부서에 제출하는 등 규제 강화의 법적·산업적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로펌의 입법컨설팅은 ‘규제’가 있는 분야는 어디든 적용된다. 최근 들어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로펌 입법컨설팅팀을 찾고 있다. 입법컨설팅이 로펌의 법률 서비스 가운데 가장 진화한 형태로 평가받으면서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입법 행정 사법 등 전방위적으로 문제 해결방법을 찾기 때문에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권해석만 잘 받아도 소송 피할 수 있어

입법컨설팅의 첫 번째 단계는 정부 부처나 법제처로부터 규제와 관련한 법령 등에 대해 고객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을 받아내는 일이다. 법률 분쟁 소지를 사전에 없애고 설사 소송 등이 벌어지더라도 유권해석을 근거로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추가로 회원을 모집하려는 27홀 규모 회원제 골프장(퍼블릭 골프장 9홀 포함)을 대리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유권해석을 받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골프장이 만들어진 건 1998년. 당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는 회원제 골프장을 지을 때 퍼블릭 골프장을 함께 만들도록 규정돼 있었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퍼블릭 골프장 건립 비용만큼의 금액을 예치토록 했다.

문제는 퍼블릭 골프장을 건립하는 것보다 예치금을 내는 게 더 이득이라는 점이다. 골프장은 당시 투자 비용만큼만 골프장 회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예치금액도 투자비용으로 인정됐다. 예치금이 많을수록 회원권을 더 많이 팔 수 있었다. 예컨대 회원제 골프장을 짓는 데 2000억원을 쓰고 500억원을 예치했다면, 회원권을 2500억원어치까지 팔 수 있었다.

여기서 퍼블릭 골프장을 짓는 비용을 투자비용으로 인정할지는 어디에도 규정돼 있지 않다. 퍼블릭 골프장을 갖고 있는 골프장으로선 상대적으로 억울할 수 있다. 태평양은 “퍼블릭 골프장 병설을 1차 의무로 지정해놓고 이를 투자비용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예치금을 내는 경우만 비용으로 인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서를 지난달 문화부에 제출했다.


◆정부·국회에 법령 개정 설득

유권해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에서는 관련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규정이나 법령 등을 바꾸는 작업을 진행한다. 법무법인 세종은 2010년 말 KB카드로부터 “돈을 꿔간 사람들의 담보재산에 대한 근저당권 등기 절차를 간소화하게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카드론을 받은 고객들의 수십만 건 재산에 근저당을 설정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서류를 다시 쓰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필요한 서류가 1.5t 트럭 여러 대 분량일 정도다. 세종은 이를 하나의 등기로 일괄 개서할 수 있도록 대법원 법원행정처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행정처에 건의했다. 행정처는 문제점을 인정하고 금융감독원 등과 협의해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율촌은 2009년 한 외국계 기업의 의뢰로 국내 자회사에 해외 모회사의 주식을 지급하는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비용으로 인정하도록 국회를 설득해 법인세법과 시행령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국내 자회사가 직원들의 스톡옵션에 대한 대가를 해외 모회사에 송금할 경우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때로는 정부도 고객이다. 율촌은 지난해 기획재정부 세제실로부터 ‘알기 쉬운 세법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부가가치세법의 조문 및 체계 정비 용역을 의뢰받았다. 율촌은 세제실과 공동 작업해 마련한 초안을 올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기업활동 막는 법률 저지도 주된 업무

고객에게 불리한 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도 중요한 업무다. 백화점도 영업제한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그 예다. 김성호 태평양 변호사는 “우선 언론이나 의원실 등을 통해 규제와 관련한 입법 추진 정보를 최대한 파악한 후 간담회, 공청회, 민원 등을 통해 반대의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며 “국제규범 위반, 기업부담 가중, 일자리 감소, 사회적 갈등 초래 등 반대 논리를 간단·명료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로펌의 입법컨설팅 변호사는 “반대의견을 의원실과 해당 상임위에 적극 설명해 상임위에 법안이 상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법안 내용에 대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의원을 집중적으로 설득해 상임위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토록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법안심사의 기초자료이기 때문에 여기에 반대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의원 영입 등 관련 조직 확대 중

입법컨설팅 수요가 늘면서 로펌들은 관련 팀을 확대하고 있다. 태평양은 지난 4월 국회법제사법위원회 법제사법팀장을 지내는 등 국회 재직 경력 12년의 최석림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15명의 인원을 운영하고 있다.

율촌은 최근 국회의원을 지낸 박은수 변호사와 이계안 고문을 영입했다. 소순무 율촌 대표변호사는 “법령 지원업무를 계속 확대해 율촌의 주요 업무로 정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도 올해 입법컨설팅 전담 변호사를 추가로 수명 영입하기로 했다. 세종은 2009년부터 입법연구기관인 한국입법연구원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입법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