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스트레스에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6~2010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0년 51만6000명으로 2006년 44만1000명보다 17%가량 늘었다. 한 해 평균 4%씩 증가한 것이다.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한 해 평균 4.4%씩 늘어 남성(2.9%)보다 증가폭이 컸다. 연령대로는 4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3%를 차지했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

우울증은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병이다. 공황장애·불면증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울증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몹쓸 병’으로 낙인 찍혀 있다. 가족도 환자도 모두 그리 여긴다. 그러나 숨겨서 ‘득(得)’이 되는 병은 없다. 특히 우울증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겹친 만큼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환이다. 최근 정부가 우울증·불안장애·불면증 등 비교적 가벼운 정신질환을 조현병(정신병)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우울증 등의 치료를 ‘격리·방치’가 아닌 ‘사회참여형’으로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버티면 된다’ 악순환의 반복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우울증 사례를 보자.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부서 업무평가를 받다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한 달 만에 몸무게가 10㎏가량 빠졌다. 온종일 초조하고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매일 자정을 넘겨 집에 가서도 잠을 거의 못 잤다. 이른바 ‘초조성 우울증’이었다. 정신과는 아예 찾아갈 생각도 안 했다. ‘이런 게 무슨 정신질환이야, 누구나 있는거지. 버터야 돼. 견딜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얼마 뒤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끊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모씨(29·여)가 우울증 치료 전력을 이유로 종신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사례는 사회적 논란을 빚기도 했다.

권준수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치료 후에도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재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술·회식으로 우울증 풀 수 없어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피로감이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처음에는 근육통, 피로감, 두통, 무력감 등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이후 우울증 단계로 접어드는데 계속되는 우울감과 흥미 상실, 자살 생각, 식욕 감소, 불면, 불안 등과 같은 증상이 몇 달 이상 나타난다. 이런 우울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가에게 상담 및 치료를 받는 것이다.

물론 초기에 스스로 치료하는 자가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기나 독서를 통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말이 통하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동료 상담’이나 상담센터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운동을 하거나 친목·봉사활동 등에 참여해 자기 활력을 찾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미 스스로 우울증을 견딜 수 없는 상태라면 전문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 대다수가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우울증은 약물치료로 증상을 효과적으로 호전시킬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부작용이 대폭 개선됐고 의존성도 약하다. 건보공단의 조사 결과 직장인 10명 가운데 4명(43.7%)은 술자리나 회식을 통해 우울한 기분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울증은 호전되기 어렵다. 전문의들은 우울증이 기분 문제로 끝나지 않고 신체적 증상을 동반할 경우 반드시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