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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폴리테인먼트 유감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정치와 오락의 이미지는 흑과 백처럼 다르다. 정치는 무겁고 장중한 데 비해 오락은 가벼운 일회용 놀이로 여겨진다. 이렇게 속성이 다른 정치와 오락이 결합한 것이 이른바 폴리테인먼트(politics + entertainment)다. 정반대의 성격이 상호보완 작용을 한다고들 한다. 정치에선 엄숙주의를 걷어내고 오락에선 경박함을 털어낸다는 것이다. 독일 미디어 학자 안드레아스 되르너는 “정치와 오락이 대중의 인기를 먹고산다는 공통점을 매개로 어울리고 있다”며 “정치인을 이웃사람으로 만들고, 오락 방송에는 격과 흥미를 불어넣는 것이 폴리테인먼트의 본질”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이 오락적 재능을 보이거나, 혹은 정치 이벤트에 오락을 끼워 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선 경선 출정식에서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앙드레김 패션쇼에 모델로 섰는가 하면 대선 때는 아이스크림통을 둘러메고 나와 시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퍼포먼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야당 총재 시절에 TV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색소폰을 부는 장면으로 유권자의 표를 얻었다. 정치와 오락의 경계는 이렇게 허물어지고 있다. 때론 정치가 오락만큼 재미있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까진 폴리테인먼트의 부정적 측면이 더 눈에 띈다. 정치를 지나치게 연성화시킨다는 게 문제다. TV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식견이나 통찰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소소한 삶의 에피소드를 전달할 뿐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힐링 캠프’에 출연, 소위 식스팩 복근사진을 보여주고 직접 기왓장을 격파한 뒤 인기가 급상승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무릎팍도사’라는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다음 서울시장 후보에 이어 대통령 후보로까지 떠올랐다. 문 고문이나 안 원장은 살아온 이야기를 개그맨 진행자들과 재미있게 나눈 것밖에 없다. 대중들은 그들이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정작 지도자로서 꼭 필요한 그 문제의 해결능력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23일 안 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하자 다른 대선후보들은 왜 우리는 안 불러주냐고 야단인 모양이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 출연자의 역량을 검증하기보다는 웃음과 공감에 더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출연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모습이 우습다. 대통령 선거가 초등학교 인기투표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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