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보다 훌쩍 큰 우리 아이, 혹시 '성조숙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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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 8세·남아 9세 미만 '2차 성징'…평균보다 키 7~8㎝ 크면 의심을
조기 분비된 성호르몬 영향으로 성장판 일찍 닫혀 성인되면 키 작아
육류 섭취·비만·스트레스 등 원인…식습관 바꾸고 호르몬 치료 병행을
조기 분비된 성호르몬 영향으로 성장판 일찍 닫혀 성인되면 키 작아
육류 섭취·비만·스트레스 등 원인…식습관 바꾸고 호르몬 치료 병행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최근 성조숙증에 대한 심사결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료 인원이 해마다 증가해 2006년 6438명에서 2010년 2만8181명으로 5년 새 4.4배 급증했다고 밝혔다. 특히 2010년 성조숙증으로 진료받은 전체 여자어린이는 2만6064명으로 남자의 2117명과 비교했을 때 10배를 웃돌았다. 박미정 인제대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사춘기가 지나치게 빨리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 같은 아이, 성조숙증 왜 늘까
성조숙증은 2차 성징이 여아는 8세 미만, 남아는 9세 미만에 일찍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숙이 신체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신체적으로 일찍 성장하지만 조기 분비된 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성장판이 일찍 닫혀 키가 크지 않는다. 특히 장기간 성호르몬에 노출되면서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자는 성인이 됐을 때 유방암이나 조기폐경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청소년기에 이성(理性) 발달보다 육체적 성숙이 앞서면 우발적 범죄를 일으킬 소지가 있고 이 성향이 변하지 않으면 커서 불행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동물성 지방섭취 증가 등 식사습관의 변화, 비만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 환경호르몬 증가, 학업 스트레스, TV나 인터넷을 통한 성적 자극 등이 한국 어린이의 성조숙증을 높이는 원인”이라며 “특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여자의 성조숙증 비율이 남자보다 10~20배 높은 것은 여성이 뇌로 입수되는 여러 가지 자극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성조숙증은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에서의 호르몬 조절기능 이상에 의한 중추성(진성) 성조숙증과 고환·난소·부신 등에서의 성호르몬 분비 이상에 의한 말초성(가성) 성조숙증으로 나뉜다.
특별한 원인 없이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비만은 거의 확실한 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지방세포가 불어나면 사춘기 촉발물질을 증가시켜 사춘기가 빨리 찾아온다는 설명이다. 1회용 플라스틱 제품에서 용출되는 프탈레이트, 비스페놀A 등의 환경호르몬도 체내에서 마치 성호르몬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성조숙증을 재촉하는 요인이 된다.
○부모가 성조숙증 빨리 알아채려면
성호르몬 분비가 초등학교 시절에 지나치게 빨라지면 사춘기 징후가 일찍 나타나 성조숙증이 되기 쉽다.
여아의 경우 아직 열살 또래인데도 유방이 발달하고 월경이 시작된다. 남자의 경우 고환이 먼저 커진 후 음경이 커지고 색깔도 짙어진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다. 땀이 많이 나고 성인의 체취가 날 수 있다. 남녀 모두 음모와 겨드랑이 털이 자란다. 남아의 경우 이 시기에 고환의 크기가 4㎖ 이상 커졌다면 사춘기가 일찍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평균신장이 남아는 120㎝, 여자는 119㎝인데 부모의 키가 평균치 이하인데도 아이 키가 또래보다 7~8㎝ 이상 크다면 되도록 성조숙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습관 개선과 호르몬 치료 병행해야
성조숙증은 ‘루프린’ 등 사춘기를 지연시키는 성선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GnRH) 유도체를 4주에 한 번씩 피하주사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4주간 약효가 지속되면서 어린이에게 성호르몬이 너무 많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해준다.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2~3년간 주사한다. 치료 시작 후 수주 이내에 성호르몬 농도가 사춘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다. 여아는 유방이 작아지고 월경도 사라진다. 남아는 고환이 작아지고 음경 발기나 자위 행위, 공격적인 행동이 줄어든다. 치료받는 동안 사춘기 신체 변화는 거의 진행되지 않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GnRH는 사춘기를 늦추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장기간 투여할 경우 성인이 된 이후 조기 폐경이나 난소질환에 노출될 위험성도 있다. 주사를 맞는 동안에 골형성이 덜 돼 오히려 키가 덜 자랄 수도 있는 만큼 장기간 사용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전문의들은 성조숙증이 아주 심한 아이들에게 1~2년 투여하는 정도는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조숙증이 있으면 성장호르몬을 함께 투여하는 게 권장된다. 뼈의 말단 부위에 있는 성장판은 보통 사춘기가 시작된 지 2~3년 후에 닫히고 이때부터 성장이 멈추게 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뼈의 성장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시행돼야 효과가 있다. 성조숙증이 있거나 사춘기 이전 매년 자라는 키가 4㎝ 이하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고려해 봐야 한다.
성조숙증은 조기진단 후 조기치료가 바람직하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는 초등학교 2~3학년 때 치료에 들어가는데 아이의 연령이 어릴수록, 저신장 정도가 심할수록, 치료 기간이 길수록, 치료 용량이 많을수록 치료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비용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월 50만~80만원 정도의 경제적 부담이 든다. 6개월 치료 후 효과가 있으면 1년 이상 계속해야 키가 크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성장호르몬은 LG생명과학, 머크, 동아제약, 녹십자(한국화이자), 사이젠코리아, 한국페링 등이 판매하고 있다. 머크사의 ‘싸이젠’은 ‘이지포드’라는 전자식 펜형 주사기기로 주사바늘이 숨겨져 있고, 용량이 자동 조절되면서 공기방울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편리하고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도움말 = 이기형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