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풍경] 오래된 물건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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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유럽의 가정에 초대받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들의 집안이 온통 ‘고물’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수십 년 된 냉장고는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고 얼굴이 남산만한 라디오는 잡음 섞인 목소리로 연륜을 과시한다. 또 주인은 음식을 이빨 빠진 접시에 거리낌 없이 내놓는다.
자동차라고 예외는 아니다. 20~30년 사용은 보통이다. 고장 나면 고쳐 쓰고 앙탈 부리면 달래서 쓴다. 새 물건을 식구로 맞아들이는 건 쓰던 녀석이 수명을 다했을 때뿐이다. 단순히 검소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래된 물건 속에는 자신의 삶의 궤적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멀쩡한 차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똥차 취급이다. 당사자보다도 옆에 있는 사람이 차 바꾸라고 더 성화를 부린다. 낡은 것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은 죄인이 된 기분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발전의 동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옛것은 새것이 대체할 수 없는 정서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노스탤지어를 만족시키는 마음의 오아시스다. 1957년 산 ‘피아트500’을 밀고 있는 여성에게 있어 차는 착잡한 현실을 이기는 귀한 물건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