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태우 전 대통령(80)의 추가 비자금 424억원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검사 김주원)는 11일 노 전 대통령이 사돈인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71)에게 비자금 424억원을 맡겼다며 진정서를 낸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만간 양측 관계자들을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검에 낸 진정서를 통해 “신 전 회장이 비자금으로 사들인 빌딩 등을 담보로 대출금을 받아 개인 빚을 갚는 데 썼다”며 “이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당시 신동방그룹에서 비자금 230억원을 발견했다. 진정서 내용대로라면 여기에 424억원이 추가되는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2397억원(91.2%)을 납부해 231억원이 미납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비자금을 찾아낼 경우 이 돈으로 아직 내지 않은 추징금을 납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경우 밀린 추징금을 다 내고도 193억원이 남는다.

노 전 대통령이 10년 넘게 숨겨온 거액의 비자금 존재를 공개하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아직 납부하지 못한 추징금을 완납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최근 건강이 악화되자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을 위해 추징금 미납이라는 걸림돌 제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들 재헌씨가 신 전 회장의 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재산 정리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두 사람은 1990년 결혼했다 최근 홍콩과 한국 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벌이고 있다. 홍콩 법원의 1심 재판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은 재헌씨가 2심 법원에 항소한 직후 수사를 의뢰하는 노 전 대통령의 진정서가 제출됐다. 재헌씨는 모든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는 2심 재판부의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돈을 돌려받기 위한 민사소송을 대비한 사전준비 작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과 신 전 회장이 사돈 간이긴 하지만 자녀들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노 전 대통령이 소송을 통해 나머지 비자금을 회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거액의 인지대가 드는 민사소송에 앞서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선거자금 명목으로 비자금 3000억원을 건넸다고 회고록에서 밝히자 김 전 대통령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체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533억원만 납부해 1672억원이 미납돼 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