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생계비의 100~120%를 버는 차상위계층이 100% 이하를 버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보다 소득이 낮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근로 등을 통해 벌어들이는 시장소득은 차상위계층이 기초수급자보다 많지만 정부의 복지 혜택을 포함하면 실제 소득이 역전되는 것이다. 정부의 복지 혜택이 기초수급자에게 집중되면서 나타난 ‘복지의 역설’이다.

정부는 이 같은 현상이 빈곤층의 근로의욕을 저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빈곤 탈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 두 계층의 소득역전 해소에 나서기로 했다.

○이상한 ‘소득 역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4일 전국 빈곤층 가구의 월평균 소득(2010년 기준)을 추정한 결과 정부의 복지혜택을 뺀 기초수급자의 월 시장소득은 36만7000원으로 차상위계층 71만9000원의 절반에 그쳤고 비수급빈곤층 38만8000원보다 낮았다. 비수급빈곤층은 최저생계비의 소득은 100% 이하이지만 부양해줄 부모나 자녀가 있어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부의 복지혜택(공적이전소득)을 포함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초수급자가 87만5000원으로 차상위계층(83만9000원)과 비수급빈곤층(51만8000원)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

최종균 보건복지부 복지정책과장은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60% 이상은 1인 가구”라고 말했다. 현재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월 55만원 정도다. 4인 가구 기준으로는 약 150만원이다.

○의료비의 딜레마

이 같은 소득 역전현상은 기초수급자에게 복지 혜택이 집중되는 반면 차상위계층에 대해선 거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기초수급자로 선정되면 생계보조금 의료비 등 최대 64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기초수급자의 여건을 따져 필요한 혜택만 주는 게 아니라 부처마다 누구한테 주는지도 모른 채 판박이식으로 혜택을 몰아주다 보니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차상위계층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비 지원 문제다. 가구주가 기초 수급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빈곤층 중에선 기초생활보장을 계속 받기 위해 일자리가 생겨도 취업을 꺼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서울에 사는 A씨(62)는 최근 20대 아들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월 120만원을 벌면서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속으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병원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차상위계층 지원 확대

정부는 뒤늦게 이 같은 복지구조에 메스를 대기로 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기초수급자의 복지 혜택을 줄이고 차상위계층의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예를 들어 기초수급자에게만 제공했던 TV 수신료, 전화요금, 인터넷요금 감면 혜택 등을 차상위계층까지 넓힐 방침이다. 또 그동안 차상위계층 일부에게만 지원했던 방과후 학교 자유수강권을 차상위계층 전체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 가구 중 빈곤층은 10.8%인 190만가구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기초수급자는 88만가구(5.0%), 최저생계비 100~120% 계층 은 36만가구(2.0%), 비수급빈곤층은 66만가구(3.8%)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