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국산 맥주, 쌉쌀한 일본 맥주’.

맥주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수입 맥주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1일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맥주 매출은 전년보다 48.9% 증가했다. 지난달 훼미리마트에서 팔린 일본 맥주는 전년 동기보다 69% 늘었다. 국내 맥주시장 전체로 보면 수입 맥주 점유율은 아직 5%에 머물지만, 대형마트에선 20%를 넘었다. 업계에서는 다양한 맥주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다양하고 진한 맛의 맥주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기꺼이 두 배 이상의 값을 치르고 수입 맥주를 카트에 담는다. 국산 맥주는 과연 수입산보다 맛이 없는 것일까. 맥주 맛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자.

국산 맥주가 맛 없다고? 당신의 편견일 수도…

맥아 함량이 낮다? 맥아 비율 60~70%…소비자 입맛 맞춰 조절

맥주의 주원료는 맥아(보리의 싹을 틔운 것)다. 맥아 비율이 높을수록 씁쓸해지면서 맛이 진해지고 색깔도 갈색빛이 짙어진다. 옥수수나 쌀, 밀 등을 섞어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을 내기도 한다.

백우현 오비맥주 브루마스터(맥주양조전문가)는 “일본은 맥아 함량을 최하 66.7% 이상으로 側忿� 관리하지만 한국은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산 맥주의 맥아 함량이 부족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원가를 아끼려고 맥아를 적게 넣다 보니 물처럼 밍밍한 맥주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실제로는 카스 하이트 등 국산 맥주의 맥아 함량은 대부분 60~70% 정도다. 맥스와 OB골든라거의 맥아 함량은 100%다. 백 브루마스터는 “맥아의 비율은 소비자 기호를 맞추기 위해 조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수입 맥주의 맥아 함량을 보면 독일 맥주는 맥아 100% 원칙을 따른다.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맥아 100%다. 하지만 미국 버드와이저는 70~80% 수준이며, 벨기에 호가든은 50%에 그친다.

유럽 맥주보다 싱겁다? 맛의 차이일 뿐 質 떨어지는 건 아니다

맥주업계에서는 국산 맥주가 유럽 맥주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맛인 것은 맞지만, 이런 점이 좋은 맥주를 따지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발효 방식의 차이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맥주는 크게 효모가 맥주통 위에서 발효되는 ‘상면발효 맥주’와 아래에서 발효되는 ‘하면발효 맥주’로 나뉜다. 상면발효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고 강한 맛이 특징이며, 주로 유럽에서 만든다. 벨기에 호가든, 독일 에딩거, 아일랜드 기네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하면발효 맥주는 깔끔하고 상쾌한 맛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국산 맥주는 하면발효 맥주 중에서도 저온에서 숙성해 목 넘김이 좋고 청량감을 주는 ‘라거(Lager)’에 속한다. 미국 버드와이저와 네덜란드 하이네켄도 라거 공법으로 만든다.

그동안 국산 맥주는 유럽식에서 미국식으로 진화했다. 이영목 하이트진로 상무는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 ‘크라운’은 진한 맛의 유럽식 맥주였지만 인기를 끌지 못했다”며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를 반영해 부드럽고 깔끔한 ‘하이트’를 출시해 히트쳤다”고 말했다. 톡쏘는 청량감의 ‘카스’가 뒤를 이으며 국내 시장은 라거 맥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국산 맥주가 가벼운 것은 1~2잔을 즐기는 외국인들과 달리 소주나 양주 등과 섞어 대량으로 즐기곤 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 때문이지 질적인 차이로 보기 힘들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저급 재료를 쓴다? 한국은 미국산 호프 선호

맥주 특유의 향과 쓴맛을 결정하는 것은 호프다. 일본 맥주는 주로 유럽산 호프를 쓴다.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향을 가진 체코산 ‘사즈’ 호프를 사용해 쌉쌀한 맛을 더했다. 김성찬 롯데아사히주류 마케팅팀장은 “일본인들은 단맛이 거의 없고 담백한 슈퍼드라이 맥주를 즐긴다”며 “일본 맥주시장 점유율 1위인 아사히 슈퍼드라이도 독일산 ‘파인아로마’ 호프를 사용해 쓴맛을 낸다”고 말했다.

백 브루마스터는 “국산 맥주는 톡 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내는 미국산 호프를 쓴다”며 “가격은 유럽산 호프보다 저렴하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더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인들은 맥주를 소량으로 즐기기 때문에 쓴맛의 맥주를 선호하지만, 한국은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은 맥주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기술력이 부족하다? 하이트·오비, 日 등 해외서 품질 인정 받아

국내 업체들은 수입 맥주에 비해 저렴하다는 이유로 국산 맥주가 질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맥주 일본 수출은 5392만달러로 2007년보다 약 8배 증가했다. 이 상무는 “입맛이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에게 국산 맥주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해외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인 버드와이저와 호가든 등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호가든은 원산지인 벨기에를 제외하면 러시아와 한국에서만 생산된다.

하지만 국산 맥주회사들이 소비자들의 다양해진 기호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두 회사의 양강구도 아래 큰 변화 없이 흘러왔다”며 “양사가 연구·개발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거품 2㎝ 일때 맥주맛 가장 좋아

독일인들은 맥주 거품을 왕관이라는 뜻의 ‘크로네(krone)’라고 부른다. 맥주잔 위로 수북히 올라온 탐스런 맥주 거품의 주성분은 효소를 활성화하는 맥아의 단백질과 호프의 쓴맛을 내는 성분인 알파산 그리고 탄산가스다. 거품은 맥주의 탄산가스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해 산화 속도를 늦추는 마개 역할도 한다. 거품이 적당히 있어야 맥주의 신선도가 유지되고 맛이 나는 까닭이다.

정영식 오비맥주 양조기술연구소장은 “맥주의 맛은 온도에서 시작해 거품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맥주를 잔에 부어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거품의 두께는 2㎝다. 손가락 두 개를 포개놓은 정도의 높이다. 정 소장은 “거품이 너무 적으면 맥주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너무 많으면 맥주 특유의 향이 탄산가스와 함께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황금비율을 맞춰서 마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일랜드 기네스와 스미딕스 등은 잔에 따랐을 때 이런 비율을 맞추기 위해 질소발생 장치를 포장용기 안에 넣기도 한다.

컵에 기름기나 이물질이 섞여 있으면 맥주 거품이 금방 꺼진다. 지방 성분이 있는 립스틱을 바르고 마시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치킨 등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는 입가를 닦은 후 맥주를 마시는 게 좋다.

맥아
싹이 난 상태의 보리. 보리에 물을 공급해 싹을 틔운 뒤 뿌리를 잘라서 쓴다. 발아할 때 생기는 효소가 전분을 분해하고 당분을 만들어낸다. 맥주에 사용되는 보리는 씨알이 두 줄로 배열된 ‘두줄보리’다. 일반 보리보다 알이 굵고 단백질이 낮다. 맥아 함량이 높을수록 맥주는 진한 갈색빛이 된다.

호프
호프는 맥주의 독특한 향과 쓴맛을 낸다. 잡균의 번식을 막고 부패를 방지하며 맥주 거품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체코, 독일, 영국 등이 주요 산지다.

효모

효모는 당을 분해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와 맛을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라거
상표 이름으로 친숙하지만 발효 방법이 다른 맥주의 한 종류다. 하면발효 효모로 낮은 온도(2~10도)에서 발효한 것으로, 다른 맥주보다 발효기간이 길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