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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에세이] 돈의 맛

돈이란 삶의 수단에 불과하지만
많이 가질수록 불행한 경우 많아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89@hanmail.net >
권력의 속성에 ‘오만’이 붙어있듯이 ‘돈’에는 ‘탐욕’이 끈질기게 붙어있다. ‘돈’의 저편에 있는 ‘탐욕’, 이 끝없이 가지려는 열망처럼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은 세상에 없다. 더 많이 얻으려는 탐욕은 가히 현대인의 광기라 하지 않는가? 상위 1%에 집중된 거대 자본, 제3세계 빈곤과 제1세계 풍요의 격차가 가공할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 노릇이다.

그런데 ‘돈의 맛’은 황홀하기만 한가. 나는 10여년 전 형사판사 시절, 수백억원의 재산가이면서 한겨울에 난방 없이 지내고 자식들 교육조차 안 시켰던 사람이 막상 그 말년에 사기꾼들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자식들은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케이스를 재판했던 일이 있다. 그때 나는 ‘아! 돈이 재앙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후에도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돈’이 사람을 짓밟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물론 나도 ‘돈’의 함수관계 속에서 법인을 운영하고 의뢰인의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이 ‘돈’이라는 명제로부터 ‘나’의 행복과 자유를 지키는 것은 상당히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나의 직업이 주는 임상학적 경험상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부자유스럽고 더 조급하고 더 불행한 경우가 많았다. 많이 가졌으면서 더 많이 원하고, 돈이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존도 또한 아주 높았다. 나 또한 변호사 개업 후 풍부하면서도 빈곤의식에 사로잡힌 나, 순식간에 불행한 영혼으로 전락하는 나 자신을 보며 간혹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돈’으로 모욕감을 주는 이 사회 속에서 갖가지 ‘소유욕’에 얽매인 피곤한 삶들, 나는 이 행복과 자유의 걸림돌을 없앨 방법을 오늘도 고민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아파트에 달린 샹들리에를 보고 기뻐하지만 우물 밖 개구리는 창공에 널린 아름다운 별을 보고 감탄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돈’을 추구하는 이 현대적 광기를 거절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중심, 자아도취의 이 정신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포기를 선언해 볼까?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어느 것도 나를 지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없는,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빼앗을 것이 없잖은가? 이 비움으로부터 오는 광활한 자유는 지친 영혼에 쉼을 주지 않겠는가?

그렇다. 비움이 주는 존재의 뚜렷함은 제 아무리 진부하더라도 ‘돈’보다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나, 너, 우리를 포함한 ‘사람’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돈’을 포함한 모든 자원은 ‘사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이모작 인생 후반기에는 ‘완전무결한 연약함’의 상태에 있고 싶다. 백발 머리 질끈 묶고, 지팡이 짚은 채 휘적휘적 이 산천을 돌고 싶다.

이은경 <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klee89@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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