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의 연결…펜팔 그리고 위치기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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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스토리 - 2030 기자의 아날로그 이야기 (끝)
잡지에 신상·사연 올려…생면부지 사람과 편지 소통
최근엔 스마트폰 신기술로 '일회성' 만남 이뤄지기도
잡지에 신상·사연 올려…생면부지 사람과 편지 소통
최근엔 스마트폰 신기술로 '일회성' 만남 이뤄지기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2년 1월28일.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인근 초원다방에서 폭탄이 터져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초원다방 사제폭탄’ 사건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당시에 화제가 됐던 사건이었다.
범인은 군인이었던 주모 중사(당시 30세)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 주 중사는 초원다방에서 연인이었던 백씨(당시 22세)를 만나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거절당한 주 중사는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사제폭탄을 꺼내 위협했다. 백씨를 따라온 사촌오빠가 이를 빼앗아 밖으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카운터 앞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사촌오빠와 다방에 있던 손님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 중사는 다방에 오기 전 미리 독약을 마신 상태였다.
◆펜팔과 실제 모습 차이가 비극 불러와
이 사건의 발단은 펜팔이었다. 주 중사는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1960년대 후반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잡지 등을 통해 간단한 본인의 신상과 사연, 주소 등을 게재하고 관심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펜팔이 성행했다. 주 중사는 펜팔을 통해 1969년 4월께 백씨와 교제를 시작했다. 둘은 2년 넘게 편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키워갔다.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둘은 결혼 서약까지 마쳤다.
주 중사는 1971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이후 서울로 찾아와 백씨와 가끔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주 중사를 만난 백씨는 매우 실망했던 모양이다. 주 중사가 글로 묘사했던 본인의 모습과 백씨가 느낀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백씨는 주 중사를 거짓말쟁이로 단정하고 슬슬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주 중사는 “비록 편지이긴 하지만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에 그렇게 돌변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앙심을 품은 주 중사는 직접 폭탄을 만들어 협박하는 마지막 수단을 취했고 폭탄이 터지는 것으로 끝났다.
◆“내용이 지저분해져가는 펜팔”
펜팔이란 말에 뒤따라오는 단어들은 대개 낭만, 향수, 그리움과 같은 것들이다. 펜팔을 통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되레 속 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일도 가능했다. 편지를 주고 받다 인연이 닿아 결혼에 이르게 됐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펜팔도 꼭 순수하고 아름다운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968년 10월 한 신문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파월장병에게 몇 번의 위문편지(?)를 보낸 어떤 아가씨가 급기야는 본색을 드러내어 월남에서 살 수 있는 외제 화장품을 부탁했고, 어떤 아가씨는 귀국하는 파월장병의 짐도 털었단다.” 이 기사는 “외국인과의 편지왕래가 고작이던 펜팔이 국내 특히 젊은 남녀 간에 왕성히 유행하고 그 내용이 지저분해져가는” 풍토를 우려했다.
실제로 추파(?)를 던지는 펜팔 편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편지의 일부분이다. “오랜만에 심심해서 잡지를 한 권 구했지요. 우연히도 나의 눈을 치료하게 만드는 친구분은 이름도 예쁘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답장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름이 예쁘고 나의 눈을 치료하게 해서 편지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가정과 당신에 행운이 있길 빌어드리죠. 안녕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모 칭찬은 작업의 기본인가보다. 자신의 스펙만 간략하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학력:고졸, 직업:경리(개인회사), 나이:1956년생, 신장:160㎝’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최근 1~2년 사이에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기기에 탑재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후즈히어(who’s here), 하이데어(hi, there) 등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으로 일회성 만남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은 결국 “기술이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식의 결론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과거 펜팔의 활용도를 봤을 때 그런 답을 도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날로그 시대든, 디지털 시대든 관계없이 사람들은 당대 최신 기술을 이용해 이성에게 ‘작업’을 하려 한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이 아닐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범인은 군인이었던 주모 중사(당시 30세)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날 주 중사는 초원다방에서 연인이었던 백씨(당시 22세)를 만나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이었다. 거절당한 주 중사는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사제폭탄을 꺼내 위협했다. 백씨를 따라온 사촌오빠가 이를 빼앗아 밖으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카운터 앞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사촌오빠와 다방에 있던 손님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 중사는 다방에 오기 전 미리 독약을 마신 상태였다.
◆펜팔과 실제 모습 차이가 비극 불러와
이 사건의 발단은 펜팔이었다. 주 중사는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1960년대 후반 베트남에 머무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잡지 등을 통해 간단한 본인의 신상과 사연, 주소 등을 게재하고 관심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펜팔이 성행했다. 주 중사는 펜팔을 통해 1969년 4월께 백씨와 교제를 시작했다. 둘은 2년 넘게 편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키워갔다.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둘은 결혼 서약까지 마쳤다.
주 중사는 1971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이후 서울로 찾아와 백씨와 가끔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주 중사를 만난 백씨는 매우 실망했던 모양이다. 주 중사가 글로 묘사했던 본인의 모습과 백씨가 느낀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백씨는 주 중사를 거짓말쟁이로 단정하고 슬슬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주 중사는 “비록 편지이긴 하지만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에 그렇게 돌변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앙심을 품은 주 중사는 직접 폭탄을 만들어 협박하는 마지막 수단을 취했고 폭탄이 터지는 것으로 끝났다.
◆“내용이 지저분해져가는 펜팔”
펜팔이란 말에 뒤따라오는 단어들은 대개 낭만, 향수, 그리움과 같은 것들이다. 펜팔을 통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되레 속 깊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일도 가능했다. 편지를 주고 받다 인연이 닿아 결혼에 이르게 됐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펜팔도 꼭 순수하고 아름다운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1968년 10월 한 신문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파월장병에게 몇 번의 위문편지(?)를 보낸 어떤 아가씨가 급기야는 본색을 드러내어 월남에서 살 수 있는 외제 화장품을 부탁했고, 어떤 아가씨는 귀국하는 파월장병의 짐도 털었단다.” 이 기사는 “외국인과의 편지왕래가 고작이던 펜팔이 국내 특히 젊은 남녀 간에 왕성히 유행하고 그 내용이 지저분해져가는” 풍토를 우려했다.
실제로 추파(?)를 던지는 펜팔 편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편지의 일부분이다. “오랜만에 심심해서 잡지를 한 권 구했지요. 우연히도 나의 눈을 치료하게 만드는 친구분은 이름도 예쁘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답장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름이 예쁘고 나의 눈을 치료하게 해서 편지하는 거니까요. 그러면 가정과 당신에 행운이 있길 빌어드리죠. 안녕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모 칭찬은 작업의 기본인가보다. 자신의 스펙만 간략하게 전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학력:고졸, 직업:경리(개인회사), 나이:1956년생, 신장:160㎝’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최근 1~2년 사이에 스마트폰 등 모바일 디바이스가 빠르게 퍼지면서 기기에 탑재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후즈히어(who’s here), 하이데어(hi, there) 등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으로 일회성 만남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은 결국 “기술이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식의 결론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과거 펜팔의 활용도를 봤을 때 그런 답을 도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날로그 시대든, 디지털 시대든 관계없이 사람들은 당대 최신 기술을 이용해 이성에게 ‘작업’을 하려 한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답이 아닐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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