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경기와 금융시장이 모호해서 그런지 각종 정책 방향을 놓고 논쟁이 심하다. 그중의 하나가 ‘인플레이션 타기팅(inflation targeting)’ 논쟁이다.

‘인플레이션 타기팅’이란 중앙은행이 전통적 목표인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설정한 억제선, 엄격히 따진다면 상한선을 말한다. 피셔의 화폐수량설을 시간으로 미분하면 증가율로 전환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재편성해 구한다. 이 선을 낮게 설정하면 물가안정에, 높게 설정하면 경제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평가한다.

‘21세기 구레나룻의 결투(battle of the beards in 21th century)’.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기르는 멋진 구레나룻에 비유되는 이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점에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위기 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2%인 인플레이션 타기팅을 3~4%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경제주체들이 소비와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이런 주장을 ‘무모하다’고 반박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한번 자극받으면 걷잡을 수 없고,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실질가치가 떨어지면 오히려 ‘디레버리지(deleverage)’에 치중해 경기는 침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쟁의 배경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금융위기 이후 일대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앙은행의 목표와 통화정책 관할 범위, 금리결정 방식 등에 대한 두 학자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변신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통화정책 관할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이다. 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신념이다.

이에 반해 현재 위기를 풀어가는 버냉키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처럼 실물경기와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여건에서는 반드시 자산시장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 의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선 크루그먼 교수도 버냉키 의장과 같은 입장이다.

관할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통화정책 목표도 수정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 왔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 할 정도로 금기(taboo)로 여겨왔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물가는 전반적으로 안정되는 추세다. 갈수록 최종 상품의 가격파괴 혹은 가격인하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성장,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물가 이외의 다른 목표를 중시해야 한다는 데에는 비슷한 입장이나 크루그먼 교수가 더 적극적이다.

통화정책 목표가 수정될 경우 적정금리 산출 방식도 변경될 수밖에 없다. 특정국의 금리는 소비자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을 더한 수치와 비교해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공식이 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테일러준칙은 중앙은행이 사후적으로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뒀는지를 알 수 있지만 사전적으로 이들 목표를 감안해 적정금리 수준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테일러준칙은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를 더한다. 그리고 평가기간 중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처럼 성장에 무게를 더 둔다면 적정금리 수준은 버냉키 의장보다 더 높게 설정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방식도 변경돼야 한다. 통화론자들은 특정국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통화준칙(monetary rule)에 의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를 테면 특정국의 물가가 인플레이션 타기팅 선보다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화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다른 목표가 더 우선시될 경우 기준금리 변경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에 의한 금리결정 방식의 결론이다. 갈수록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 힘을 얻고 있다. 재량적인 기준금리 결정 방식에 대해서 크루그먼 교수는 버냉키 의장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은행 변화에 대한 두 학자의 입장을 보면 ‘인플레이션 타기팅’을 놓고 왜 논쟁이 벌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미국 국민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에 시달린 적이 있다.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처럼 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해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물가만 치솟을 경우 이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버냉키 의장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