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5시, 공시(공무원 시험) 학원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서울 노량진동 고시촌의 L고시원. 이곳은 지난 1월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등 방마다 취사 시설을 불법으로 설치했다가 서울 동작구청에 적발돼 3000여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냈다. 지상 6층, 연면적 748㎡ 규모의 고시원 내부로 들어서자 14㎡ 남짓한 규모의 방 32개가 두 명이 지나면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은 중앙통로를 따라 ‘ㄷ’자(字) 형태로 배치돼 있었다. 각 방에는 옷장과 싱크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세탁기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한쪽에 겨우 한 사람이 누울 공간이 있었다. 중앙통로 끝에 화재시 비상통로나 계단은 에어컨에 막혀 있고 유도등도 꺼져있었다.

취재에 동행한 동작소방서 소속 박성수 지도팀장은 “설립 허가가 쉬운 고시원으로 등록한 뒤 방마다 가스레인지 등을 들여 놓는 것은 건축법으로 금지돼 있다”며 “더욱이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가 불붙기 쉬운 침대나 옷걸이 등과 좁은 방에 한데 엉겨있어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 부산 서면의 노래주점에서 9명의 생명을 앗아간 화재 사고를 계기로 또 다른 대형참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고시원의 불법개조를 막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10년 새 고시원 화재로만 희생자도 28명에 이른다. 반면 노래방은 화재발생 건수가 고시원보다 많지만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서 화재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매년 늘어나는 고시원 건축허가만큼 불법개조도 손쉽게 이뤄지고 있다. 높은 임대수익을 올리기 위한 불법개조가 성행하지만 화재 방지를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시피한 점이 문제다. 한 층에 20~30개 쪽방이 있지만 유일한 탈출구인 비상계단은 대형 에어컨 등에 막혀있어 화재위험성은 그만큼 높다. 게다가 2010년부터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했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은 소급적용 받지 않아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신촌 고시원 20%가 불법 개조

취재팀은 ‘고시원 불법개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노량진 고시촌 일대 50곳, 대표적인 대학가인 신촌 일대 50곳을 직접 확인했다. 신촌과 노량진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조사 결과 방마다 취사도구를 설치한 고시원은 노량진 고시촌 인근 7곳(14%), 신촌은 그보다 많은 12곳(24%)으로 확인됐다. 모두 관할 구청으로부터 고시원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방 안에 취사 시설을 설치하고 원룸 형태로 불법 용도변경한 건물이었다.

불법개조 사실이 구청 단속에 걸리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한 번만 내면 끝나는 과태료와 달리 이행강제금은 시정(원상복귀)될 때까지 매년 과태료를 내야 한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이행강제금은 건물 크기와 위반시설 등을 감안해 결정되는 데 통상 수천만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고시원 불법개조가 늘면서 최근 몇년 새 고시원 화재발생 건수도 증가세다. 서울·경기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 고시원 화재 사고는 2009년 21건이던 것이 2010년엔 26건, 지난해엔 38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고시원 화재로 인한 사망자도 최근 10년간 28명(부상 49명)에 달한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부산 화재사건을 계기로 노래방의 화재 대비 안전이 사회 이슈로 떠올랐지만 (화재 건수 당 사망자 비율만 봐도) 이보다 더 위험한 곳이 고시원”이라고 말했다.

○수천만원 과태료 내도 남는 장사

1인가구 증가, 전세난 등으로 고시원은 매년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전국 고시원 건축허가는 2007년 상반기 3000㎡(8동)에서 2010년 상반기 55만3000㎡(1197동), 지난해 상반기 74만4000㎡(1339동)로 크게 늘었다. 서울 시내 고시원의 방은 5777실(지난 1월 기준). 전문가들은 최근 1~2인가구가 늘어난 데다 고령화, 전세난 등이 맞물리면서 저렴한 주거지를 찾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고시원을 불법개조하면 일반고시원보다 임대수익이 높기 때문에 고시원으로 허가를 받은 뒤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불법개조에 나서는 업주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또 고시원은 의무 주차공간이 원룸보다 훨씬 적다. 가구당 0.5대꼴로 주차시설을 만들어야 하는 원룸에 비해 고시원은 134㎡당 1대만 설치하면 된다. 고시원 방 하나가 13㎡ 규모라고 가정하면 방 10실당 1대의 주차공간만 확보하면 되는 셈이다. 의무 주차공간이 적은 만큼 건물 내 방을 많이 지을 수 있어 원룸보다 임대수익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다.

불법개조가 적발되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하지만 업주들은 과태료를 내야 하는 상황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원룸텔 등으로 불법개조해 임대하면 이행강제금을 내고도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량진동 고시원에서 취사시설이나 샤워실이 없는 방은 월세가 20만~35만원이다. 반면 에어컨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등을 갖춘 ‘풀옵션’이면 월세가 40만~65만원으로 훌쩍 뛴다. 또 가구당 500만원 이상의 보증금도 받을 수 있다.

32개실을 보유한 노량진동 L고시원의 경우 평균 방값이 인근 고시원보다 20만~25만원가량 비싸다. 단순 계산하면 월 600만원 이상을 더 벌 수 있다는 셈이 나온다. 매월 300만원 정도의 이행강제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인 셈이다. 이 건물 5층의 탁모씨(27)는 “개별 취사시설이 있어 편리하기 때문에 다른 방보다 비싼 1000만원의 보증금에 월 65만원을 낸다”고 말했다.

노량진 고시원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업주 입장에서는 설립 허가도 쉽고, 적은 돈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어 고시원을 불법개조하려는 유혹을 쉽사리 뿌리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서울시, 불법 개조 현황파악조차 못해

부산 서면 노래방 화재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8일 김황식 국무총리는 “노래방, 고시원 등 다중이용시설의 각별한 안전 점검과 함께 철저한 원인 분석을 통해 제도 개선, 재발 방지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시설물 불법개조 등에 대한 주의와 점검을 당부했다.

하지만 고시원 불법개조 조사 주무관청인 서울시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실태조사에 소극적이다. 고시원 불법개조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5개월째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서울시 건축정책팀은 지난 1월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고 밝혔지만 아직 서울 전역에 불법개조 고시원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불법개조 전수조사 진척상황을 알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아직 조사 중”이라는 말만 두 달째 되풀이했다. 일선구청에선 현장 지도 점검을 나가면 업주가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더욱이 2010년부터 신설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그 이전부터 영업을 하고 있는 고시원은 소급 적용이 안돼 화재에 무방비 상태다.

박외철 부경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전체 고시원에 간이 스프링쿨러를 설치하면 자동으로 불이 진압되기 때문에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관할 구청에서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 불법개조 고시원으로 적발될 경우 영업 정지 등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우섭/박상익/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