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오랜만일세. 오늘은 피에르 퓌비 드 샤반(1824~1898)이라는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한 점 보여주겠네. ‘해변의 소녀들’이라는 작품인데 누드의 세 소녀가 바닷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림일세. 그런데 분위기가 좀 묘하지 않은가. 세 소녀 중 어느 누구도 관객 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 말일세. 가운데 서 있는 소녀는 아예 등을 돌리고 있네. 그들은 관객과 대화를 나눌 의사가 전혀 없어 보여. 관람객으로서는 맥 빠지는 기분이야.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림에 원근감이 전혀 없다는 점이야. 금빛이 감도는 왼쪽의 바위와 오른쪽의 바다, 그 위의 노을 진 하늘은 마치 색종이를 오려붙인 것처럼 평면적이야. 게다가 색채도 강렬함과는 거리가 멀어. 도무지 회화의 상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미운 일곱 살’ 악동이 그린 것처럼 말일세. 놀라운 건 규칙을 몽땅 파괴했는데도 작품이 그럴싸하다는 점이야. 반칙투성이 그림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 것, 퓌비 드 샤반이 현대미술에 던져 준 선물일세.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