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영국의 한 청년이 새로운 진공청소기를 개발했다. 청소기 안에 있는 먼지봉투를 없앤 것. 스스로는 획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청년은 개발한 진공청소기 모형을 들고 청소기 제조업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제조업체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봐 청년, 먼지봉투가 뭐 어때서 그래. 우린 아쉬울 게 없어”라고 했다. 다른 회사 간부는 “그게 그렇게 좋다면 후버(세계적 진공청소기 업체)에서 왜 진작 내놓지 않았겠어”라며 비웃었다.

그로부터 13년 뒤. 이 청년은 회사를 직접 세웠다. 회사명은 ‘다이슨’. 먼지봉투를 없앤 다이슨 청소기를 직접 출시했다. 이 청소기는 출시 18개월 만에 영국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청년은 다이슨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제임스 다이슨이었다.

다이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본사에 이런 글귀를 적어놓도록 했다. “전기를 이용한 선풍기는 1882년 발명됐다. 날개를 이용한 그 방식은 127년간 변하지 않았다.” 2009년 다이슨은 세계 최초로 날개없는 선풍기를 출시했다.


◆고전을 싫어했던 소년

다이슨은 1947년 영국 노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전 담당 교사였다. 하지만 다이슨은 고전에는 흥미가 없었다. 기업인으로 성공한 뒤 모교에서 그는 학생들로부터 “지금까지 고전이 얼마나 도움이 됐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변은 간명했다. “전혀요.”

다이슨은 고전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깨닫는 데 관심이 많았다. 학창시절엔 목관악기 바순을 연주했다. 바순은 다루기 어려운 악기였다. 음악 선생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스스로 배웠다. 다이슨은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는 게 매력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스스로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다이슨에게는 더 중요했다. 이런 성향은 그를 기업인의 길로 이끌었다. 1978년 어느날 청소를 하던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서비스센터를 찾는 대신 직접 청소기를 분해했다. 먼지가 먼지봉투의 미세한 구멍을 막고 있었다. 먼지봉투를 이용한 청소기의 한계였다. 다이슨은 창고 안에 틀어박혔다. 새로운 진공청소기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3년 뒤 다이슨이 만든 청소기에는 먼지봉투가 없어졌다. 빠른 속도로 먼지를 회전시켜 걸러내는 작은 장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훗날 “진공청소기를 분해했을 때 바순을 배웠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공기를 내뿜는 악기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기계로 대상이 바뀌었지만, 다루는 방식은 똑같았다”는 설명이었다.

다이슨은 직원들에게도 청소기를 분해하게 한다. 회사 직원들은 출근 첫날 청소기를 분해해야 한다. 가장 직급이 낮은 직원부터 임원까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이다. 다이슨이라는 회사의 연혁을 줄줄이 소개하는 것보다 회사의 대표상품을 직접 만져보는 것이 직원들에게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다이슨은 “누구의 말도 듣지 말라”고 자주 말한다. “소비자조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기존 공식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뜯어보는 실험정신을 다이슨의 성공비결로 꼽는 이유다.

◆본질을 찾은 뒤 하나에 집중하는 전략

다이슨은 회사 내에서 메모를 없앤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모는 고민할 시간을 빼앗고 또 다른 메모를 낳을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메모는 생각을 집중시키는 게 아니라 분산시킬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다이슨은 수십장의 메모보다 한 가지 통찰을 중시했다. 사물의 본질을 찾아낸 뒤 그 부분에만 파고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이슨 청소기를 출시했을 때도 원칙은 같았다. 먼지봉투를 없애는 것에만 집중했다. 다이슨이 공들인 것은 나머지 장치들을 떼어내는 것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공기청정 버튼도 청소기에 달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것을 팔 때 여러 장점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소비자는 단 한 가지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쓸데없는 장치들은 게으른 디자이너들이 뭔가 일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칙도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대학생 시절이던 1973년 로토크라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에서 다이슨의 첫 제품이 나왔다. 바다를 달리는 고속정 ‘시트럭(sea truck)’. 야심차게 내놓은 제품이었지만 판매는 시원찮았다. 시트럭의 뛰어난 기능을 아무리 설명해도 고객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이슨은 그 원인을 메시지를 분산시켰다는 것에서 찾았다.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목적 배’라고 시트럭을 소개한 것이 실수였다. 다이슨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목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술 하나를 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한 가지 본질적 요구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다이슨이 로토크에서 나와 1974년 출시한 정원용 손수레 ‘볼배로’가 대표적 예다. 볼배로엔 바퀴가 들어가는 자리에 플라스틱 공이 들어가 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잔디 위에 바퀴 자국이 남지 않길 원하시나요. 진흙에 바퀴가 빠지지 않길 원하시죠. 그럼 바퀴를 빼고 플라스틱 공을 끼운 볼배로를 쓰세요.” 볼배로 시제품엔 손잡이로 짐을 올리고 내리는 기능이 있었다. 다이슨은 제품을 출시할 때는 이 기능도 빼버렸다.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볼배로는 출시 3년 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계속해서 실패하라”

5126. 다이슨이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하기까지 실패한 횟수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하루에 하나씩 모형 청소기를 만들었다가 다시 부쉈다. 아크릴 청소기, 놋쇠 청소기, 알루미늄 청소기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다이슨이 창고에 틀어박혀 청소기와 씨름하는 동안 아들 샘이 태어났다. 그동안 부인이 미술교실을 열어 생계를 책임졌다. 다이슨은 5127번째 모형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이슨 청소기엔 ‘비틀스 이후 가장 성공적인 영국제품’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청소기를 단순한 상품을 넘어 혁신의 아이콘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 제품은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에 전시된 유일한 가전제품이기도 하다. 다이슨이 만든 회사는 연간 1조5000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가전업체로 성장했다.

다이슨은 자서전 제목도 ‘계속해서 실패하라’로 붙였다. 부제는 ‘그것이 성공에 이르는 길’. 다이슨은 기존 전문가들의 냉소, 수천개의 미완성 제품, 자금문제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자신의 성공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혁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 실패라는 관문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혁신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이 다이슨의 지론이다.

다이슨은 실패가 두려워 쉬운 길만 선택하는 기업 풍토를 비판한다. 그는 “요즘 혁신적이지도 않고 이익률도 낮은 상품을 최대한 빨리 팔려는 기업들이 많다”며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팔아 장기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