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이기 때문에 지필묵을 사용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서양의 재료를 과감히 차용한 그는 유성 광택을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아크릴판에 안료를 문지르며 새로운 형태의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개척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25일부터 내달 3일까지 펼치는 그의 개인전은 반세기가 넘는 화업을 반추해보는 회고전.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 형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1988년 선화랑 회고전 이후 24년만이다. 한국화가 오용길 이화여대 교수 등 제자들이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대표작 120여점이 출품된다.
1922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과 함께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 미대에서 수학한 뒤 상파울로 비엔날레(1969), 도쿄 아시아현대미술 초대전(1978), 인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국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화여대 산업미술대학장을 역임한 그는 국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자신의 작업을 많은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1960년대 작품부터 2010년 전후 근작까지 대표작 120점과 평생 모은 수목, 물품 425점을 최근 전남 함평군에 기증했다.
그는 초기에는 다채롭고 명징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점차 어둡고 탁한 색을 섰다. 작품 주제는 산과 돌을 비롯한 자연세계. 추상형태나 유동적인 물질이 가득한 작품을 즐긴다. 선과 면을 중첩시키고 그 사이에 다양한 색조를 써 태초의 혼돈을 묘사한 것 같은 그의 작업은 동양화의 힘과 서양화의 질감을 절충하면서 한국화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선과 색의 대비, 흑백으로 표현한 현대적 추상성이 돋보인다.
1970년대 대표작 ‘은총’은 아크릴 재료를 활용해 수묵이나 채색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최대한 표현한 작품이다.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 재료의 한계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색채나 수묵은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수단이지 재료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서양화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회고전 추진위원장인 오용길 교수는 “광복 이후 한국화단의 주축이었던 오당 선생은 한국화가로 서양의 재료를 사용하며 한국화의 지평을 넓혔다”며 “당시 사실풍의 동양화 미술사조에서 전통에 대한 혁명을 일으킨 용기있는 화가이자 새로운 자기계발의 주역이었다”고 말했다. (02)580-160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