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 트럼프 그룹 회장
"자산의 절반은 이름 값"
10대 때부터 부동산 거래 배워…랜드마크 빌딩 연이은 투자 성공
언론 인지도 높이며 브랜드 구축
"회복의 달인"
카지노 사업 악화로 파산 위기…브랜드 내세워 대출 연장 끌어내
신중한 운영으로 불황 돌파
미인대회 ‘미스 유니버스대회’ 주최자, 세 번의 결혼, 사치스러운 생활,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의 대사 “너는 해고야!(You are fired!)”….
미국 최대 부동산회사 트럼프 그룹의 도널드 트럼프 회장을 검색하면 나오는 얘기들이다. 20대에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부동산 업계에 뛰어들어 40대 초반에 억만장자가 된 그는 미국 최고의 이슈 메이커 중 한 명이다. 그를 ‘타락한 부(富)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경영 능력이 과소평가됐다는 평가도 따라다닌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 전략은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 것. 트럼프 회장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고, 트럼프 그룹은 현재 ‘트럼프’ 브랜드로 라이선스 사업을 하고 있을 정도다. 컨설팅업체 루벤스타인 어소시에이트의 하워드 루벤스타인 대표는 “트럼프만큼 인지도의 힘과 브랜드 가치를 잘 아는 사업가는 없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회장 스스로도 “내 자산은 70억달러이며, 이 중 30억달러는 내 이름의 브랜드 가치”라고 말했다.
◆‘타락한 부(富)의 화신’ vs ‘타고난 사업가’
트럼프는 1946년 프레드 트럼프와 메리 매클리오드 사이에서 4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건설업자였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닌 것이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건축 공사장에 다니곤 했다”고 회상했다.
뉴욕 군사학교에 재학 중이던 10대 때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건물을 살피는 일, 건축용 토지를 사기 위해 흥정하는 법 등을 배웠다. 대학 때는 미국 연방 주택관리국(FHA) 자료를 뒤졌다. 경매에 나온 건물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살 만한 게 있나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을 하고 있으면 흥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딴 뒤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트럼프 회장은 20대 중반부터 ‘크고 화려한 사업’을 추구했다.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주로 아파트를 지었다. 트럼프 회장은 아버지의 사업을 ‘똑같은 건물을 여러 개 짓는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재료값을 아끼는 것보다 주변을 압도하는 화려한 랜드마크를 짓는 것이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의 결과물이 트럼프 타워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뉴욕에 트럼프 그룹의 상징인 ‘트럼프 타워’를 지었다. 사방을 최고급 유리인 ‘브론즈 솔라’로 둘러쌌다. 로비는 6층 높이로 짓고 바닥과 벽을 모두 대리석으로 깔았다. “부동산 사업에서 입지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신비한 매력”이라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지금도 트럼프 타워는 뉴욕의 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주변보다 비싼 임대료에도 사무실은 전부 팔려 나갔다.
◆“화려하라, 하지만 조심하라”
그의 제1 경영철학은 “크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트럼프 회장은 항상 “남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원칙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라”는 것. 애틀랜타에서 1980년 시작한 카지노사업은 트럼프의 철학이 사업에 어떻게 적용됐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호텔만 운영하던 그는 애틀랜타에 카지노를 짓기로 결심했다. 카지노가 숙박업보다 수익성이 몇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틀랜타에 카지노를 지을 만한 부지는 잘개 쪼개져 여러 사람이 갖고 있었다. 필지를 하나로 합쳐 인수하려면 어려운 법정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많은 카지노 사업가들이 지레 겁을 먹고 물러났다.
하지만 트럼프 회장은 카지노 사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변호사를 선임해 공격적으로 땅을 사들였다. 영어를 못하는 땅 주인을 설득하기 위해 통역요원을 따로 채용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토지를 취득했다. 하지만 주 정부로부터 도박장 허가를 받는 게 문제였다. 이미 상당한 돈을 투자한 상태였다. 주변에선 “주 정부의 허가가 날 가능성이 높으니 서둘러 공사를 시작해 하루라도 빨리 투자비를 회수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회장은 수백만달러의 추가 비용을 감당하면서 허가가 날 때까지 공사를 시작하지 않고 기다렸다. “만에 하나 허가가 안나면 투자비용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카지노는 성공적으로 완공됐다.
반면 대형 호텔 체인인 힐튼그룹의 배런 힐튼 회장에게는 트럼프의 신중함이 없었다. 힐튼은 같은 지역에 카지노를 지으면서 면허를 신청함과 동시에 4억달러를 투자해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완공 두 달을 앞두고 면허 신청이 거부됐다. 한참 뒤 승인이 났지만 엄청난 손해를 본 뒤였다. 결국 트럼프는 빚에 허덕이던 힐튼의 카지노를 사들였다. ‘트럼프 캐슬’이라는 이름의 이 카지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업이 잘 되는 곳 중 하나가 됐다.
◆“쓰러져도 일어난다”
그에게 시련도 있었다. 주력인 부동산, 카지노, 호텔 등이 모두 경기에 민감한 사업이기 때문에 불황이 올 때마다 크게 흔들렸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전 세계 경기가 크게 위축됐다. 그때 트럼프는 11억달러를 투자, 애틀랜타에 타지마할이라는 새 카지노를 짓고 있었다. 전쟁과 같은 변수를 예상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의 빚은 계속 늘어 90억달러에 달했다. 그는 “모든 사업이 잘 되다 보니 투자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파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은행에 “빚을 갚을 수 없으니 만기를 연장해 달라”고 배짱을 부렸다. 일반적으로는 사업이 어려워지면 자산을 팔아 빚을 갚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한번 물러서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실패하지 않는 것’보다 ‘성공’을 택한 것이다. 은행들은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믿었다. 이후 10년간 트럼프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1993년부터 경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그는 5년 만에 엄청난 빚을 전부 상환했다. 성공에 대한 갈망과 ‘트럼프’라는 브랜드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2004년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카지노 사업 악화로 두 번째 파산조정 신청을 한 것. 하지만 그는 첫 번째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위기를 극복했다. 포기하는 대신 시카고 마이애미 등 9개 지역에 건물을 짓고 라스베이거스에 새로운 카지노를 열었다. 위기는 2년이 못 돼서 지나갔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위기설이 돌았지만, 트럼프 그룹은 여전히 공격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미국의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트럼프 회장을 “회복의 달인(master of comeback)”이라고 평가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