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갔다온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위장크림’이 얼마나 뻑뻑하고 잘 안 지워지는지, 화학성분은 왜 그리 많이 넣었는지. 피부가 약한 사람은 시쳇말로 ‘얼굴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화장품업체들이 ‘위장크림이 피부에 안 좋다’며 고민하는 군인들을 겨냥한 ‘사제 위장크림’을 잇따라 출시, 불꽃 튀는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오래 전 군생활을 한 예비역들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겠지만, 보급품으로 나온 위장크림을 버리고 사제 위장크림을 사서 바르는 젊은 군인들이 늘고 있다.

경쟁에 먼저 불을 댕긴 곳은 아모레퍼시픽 계열의 이니스프리다. 2010년 11월 천연성분을 쓴 ‘익스트림 파워 위장크림’(8000원)을 온라인몰에서 선보인 뒤 반응이 좋자 작년 3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주녹차로 녹색, 숯으로 검정색, 소나무 추출물로 갈색을 낸 제품이다. 지금까지 14만여개가 팔렸다.

한정화 이니스프리 마케팅팀 대리는 “당시 처음 선발된 여성 학군단(ROTC)에 후원할 목적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소량 제작한 상품인데 남성들에게 불티나게 팔려 우리도 놀랐다”며 “아토피를 앓는 사람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적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 제품이 쏠쏠한 매출을 올리자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토니모리는 작년 11월 알코올 등 눈을 따갑게 하는 화학성분을 모두 뺀 ‘댄디가이 퍼펙트 위장크림’(8000원)을 출시했다. 출시 4개월여 만에 1만개가 판매됐다. 경기 의정부 등 군부대 밀집지역 인근 매장에서 매출이 집중적으로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LG생활건강이 지난달 출시한 ‘보닌 위장크림 세트’(2만원)는 피지를 빨아들이는 기능성을 강조한 ‘스타일피니셔 위장크림’과 함께 위장크림을 깨끗이 지워주는 클렌징 폼, 얼굴에 보습 효과를 주는 시트형 스킨까지 한데 묶었다. 소속 부대 특성에 따라 색상 배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스킨푸드는 지난달 수박 추출물로 색깔을 낸 ‘수박 줄무늬 위장크림’(8000원)에다 위장크림이 잘 닦이도록 만든 ‘수박 엠보싱 클렌징 티슈’(5000원)까지 내놨다. 훈련기간 중 세안을 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 위장크림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물티슈를 개발한 것이다. 이 회사는 ‘고무신(군대 간 남자친구를 둔 여성을 가리키는 애칭)’들의 택배 선물 수요를 잡기 위해 최근 광고까지 내보내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이 ‘외모만큼은 민간인처럼’ 가꾸길 원하는 젊은 군인들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스킨·로션 등을 반입하는 데 제한이 없다. 최영숙 LG생활건강 보닌팀 브랜드매니저는 “요즘 군인들은 남성 패션잡지를 많이 읽고 스타일에 일찍 눈을 떠 스킨·로션 같은 기초화장품은 물론 클렌징 폼, 마스크팩까지 구매한다”며 “연간 1조원대로 성장한 남성화장품 시장에서 군인들이 ‘큰손’으로 뜬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