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의 불법사찰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시민사회 각계 인사 274명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권재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4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 불법사찰 비상행동’을 구성키로 결의했다.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는 “사찰을 당해 삶이 파괴됐지만 정부는 내게 사과는 커녕 이념공세를 하거나 참여정부의 자금책이란 허위사실로 압박한다”며 “드러난 진실 앞에서도 여전히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변명만 일삼는 이명박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정부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표는 “국가의 공권력 때문에 삶이 파괴된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해 주는 상식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명박정부는 나를 국민으로 대접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2008년 9월 이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총리실의 지속적인 사찰을 받아왔다.

또 다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도 “오늘 아침 우리 집 전화 톤이 갑자기 높아졌고 통과 감도 좋아져서 기분이 좋다”며 “청와대의 하명대로 내가 사는 빌라가 불법으로 얻은 것이었다면 정부와 총리실 관계자들이 만족스러워했을텐데 그분들의 기대와 달라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이메일이 해킹되고 홈페이지가 날라가 버렸다”며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설명하고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장관은 김대중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진보단체들은 과거 독재정부 아래서도 사찰 피해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국무총리실과 청와대 지시로 당했다는 게 경악스럽다”며 “이는 민주주의 자체를 포기한 것이자 국민의 인권을 말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이석기 참여연대 공동대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불교평화연대공동대표인 명진 스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4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불법사찰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연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