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중동으로 몰려가는 은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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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중동 뚫어라" 한마디에 '화들짝'
자금 담당자 잇단 출국…자금유치·보증 MOU
자금 담당자 잇단 출국…자금유치·보증 MOU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공했다. 이 대통령은 작년부터 수시로 중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중동지역 순방을 다녀와 “중동은 천연자원과 자금력, 개발 수요를 모두 갖춘 세계 유일의 지역”이라며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이 직접 주요 정책금융기관과 민간 금융회사 관계자들까지 불러모아 “중동지역에서 자금을 조달해 해외 대형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중동으로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안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자 각 은행의 자금 담당자들은 이전까지 불모지로 버려뒀던 중동을 잇따라 방문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
현재까지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은 수출입은행이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이 작년 9개 중동계 금융회사와 MOU를 체결한 데 이어 11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얄화로 2억달러어치 채권을 발행하는 성과를 거뒀다. 민간 금융회사는 까다로운 채권 발행 대신 직접 차입을 택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작년 말 중동계 금융회사들로부터 총 1억달러를 빌렸다. 우리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만기 1년 이하 단기자금이지만 외화조달 지역 다변화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 관계자들은 지난 12일부터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방문해 현지 금융시장 사정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꿩(자금조달) 대신 닭(보증)’을 택한 경우도 있다. 기업은행은 UAE의 두바이내셔널뱅크(자산규모 60조원)가 현지 진출한 국내 기업에 대출해줄 경우 기업은행이 보증을 서겠다는 MOU를 곧 체결할 계획이다.
◆‘속빈 강정’ 지적도 나와
그러나 갑자기 금융계에 불어닥친 중동 바람이 별 실속 없이 끝나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특히 청와대가 주문하는 ‘중동 자금 조달’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중동에 가면 오일머니가 풍부하고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환상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오일머니는 대부분 국부펀드나 사모펀드 형태로 유럽 미국 등에 나가 있으며, 중동 현지 금융회사는 국내 금융회사보다도 훨씬 규모가 작고 우리에게 빌려줄 돈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작년 11월 수출입은행의 리얄화 채권 조달 금리는 달러화로 바꿨을 때를 기준으로 리보금리에 249bp(1bp=0.01%포인트)를 더한 수준으로, 일반 글로벌 본드 발행에 비해 크게 싸지는 않았다. 다른 금융회사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구체적인 ‘대형 프로젝트’가 가시화된 것도 없는데 자금조달부터 채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시중은행 중 일부는 아예 ‘중동엔 관심 없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하나은행은 두바이에 있던 사무소를 아예 작년 9월 철수했다. 신한은행도 “중동에 진출할 특별한 유인이 없다”고 밝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