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의 열망 PGA '호령'…존 허, PGA 데뷔 5번째 대회 만에 우승
인사이드 Story
새벽별 보며 15㎞를 달렸다
골프장 공 주으며 눈치 연습…단칸방서 키운 세계 최고 꿈
새벽별 보며 15㎞를 달렸다
골프장 공 주으며 눈치 연습…단칸방서 키운 세계 최고 꿈
최종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공동 13위로 처져 있어 우승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는 이날 8타를 줄이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갔다. 연장전은 그의 인생처럼 굴곡졌다. 6번째홀에서는 홀인원을 낚을 뻔했으나 60㎝ 버디 퍼트를 놓쳤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지난해 말 퀄리파잉스쿨에서도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마지막 홀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트리며 공동 27위로 떨어져 25명까지 주어지는 티켓을 놓쳤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 드는 순간 거짓말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상위 입상자 중 두 명이 투어 카드를 이미 확보하고 있어 그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에게 항상 행운이 따랐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한국프로골프협회 신인상 시상식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지 못했던 것이다. 돈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다 갈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제 갓 퀄리파잉스쿨을 합격한 뒤 코앞에 닥친 첫 대회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의 삶에는 늘 가난이 따라다녔다. 199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에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미국 시카고로 떠났다. 골프가 하고 싶어 집에서 15㎞나 떨어진 퍼블릭 코스로 새벽 5시에 나가 연습장에 널려 있는 볼을 줍고 허드렛일을 도우면서 공짜로 볼을 쳤다. 가난한 이민자인 아버지 허옥식 씨는 노동일,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밤낮없이 일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몇 달간 모은 700달러를 들고 지역 미니투어에 출전해 우승했다. 그 상금 3만달러로 2009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코리안투어 외국인 퀄리파잉스쿨에 나가 시드를 획득했다.
2010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경기도 광주의 한 연립주택에서 지냈다. 오랜 외국생활로 국내 환경과 문화가 낯선데다 성격마저 내성적이어서 국내 선수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의 에이전트를 지낸 K씨는 “국내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이런 부담이 몇 차례 결정적인 우승 찬스에서 소극적인 플레이로 나타나 우승컵을 놓치게 만들곤 했다”고 얘기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펄펄 날았다. 이번 대회 우승 전에도 신인 중에서 가장 상금랭킹이 높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한 뒤에도 후원사가 잘 생기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인삼공사에서 후원했으나 미국으로 진출하며 이마저도 끊어졌다. 연초에 부친이 들어와 후원사를 구했으나 재미교포인데다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아 외면을 받았다. 그는 이날 “꿈이 이뤄졌다. 데뷔 다섯 번째 대회에서 우승해 이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