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꼼수 "한·미FTA 폐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민주당 재재협상으로 말바꿔…FTA 걷어차면 누가 좋아하나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한명숙 대표가 미국대사관 앞에서 ‘집권한 다음 FTA를 폐기하겠다’며 주먹을 휘두르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상원에 ‘배째라’식 편지를 보내 한판 붙자고 했던 것이 엊그제다. 지난해 11월 FTA동의안의 국회 비준과정에서 그들이 보인 사생결단식 저항은 또 어땠는가. 한·미 FTA협상을 시작하고 마무리지은 ‘노무현’을 계승해 정권을 되찾겠다는 정당이 국민들에게 공언한 FTA 폐기다.
4월 총선은 필승이고, 12월 대선 승리도 눈앞에 와 있다는 확신이 지나쳤으니 거리낌없이 ‘집권 후’를 말하는 것이다. 실패하고 부패한 이명박 정권, 문패를 바꿨지만 무능과 분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자업자득이니 어쩌겠는가.
그렇더라도 그들의 지각능력을 의심케 하는 한·미 FTA 폐기 주장이었고,확실히 너무 나간 오버액션이었다. 스스로의 무지(無知)를 드러내면서까지 정색하고 덤벼들었다. 한·미 양국의 안보동맹을 넘어 세계 최대 시장과의 경제동맹을 완성한 것이 FTA의 의미다. 지금까지 수백건의 세계 각국 FTA가 일방적으로 폐기된 전례 또한 없음은 서로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되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반미면 어때?”했던 노무현이 만들어낸, 운명적인 통상국가로서 국민들이 먹고살기 위한 생존과 발전의 길을 찾은 한·미 FTA였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때 그때 달라요’의 특기를 살려 다시 말을 바꾸면 될 일이다. 과거 국무총리를 지낸 한 대표를 비롯 정동영 손학규 김진표 유시민 등 노무현 정권의 주역들이 한·미 FTA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어떤 예찬론을 펼쳤는지 발언 하나하나가 이미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되풀이할 건 없다. 어이없는 것은 그들이 지금 와서 한결같이 FTA에 대해 눈 뜬 장님이었음을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내놓고 자랑하고 있는 점이다.
예전과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제 금융질서 변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FTA 폐기의 당위성을 설명하는지 상관관계를 알 수 없다. 사실 처음 FTA협상을 시작하고 타결지었을 당시부터 반대론자들은 국내 금융산업이 초토화될 것이란 문제를 제기했었다. 월가의 정체모를 파생상품이 밀려오는데 한국 금융의 실력으로는 스스로를 보호할 힘조차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닌 게 아니라 2007년 타결된 한·미 FTA가 그때 발효됐더라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준 충격이 더 컸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금융위기와 FTA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부정한 사람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인 2008년 11월의 공개 발언이다. 게다가 우리와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은 금융위기 이후 더 몸달아 FTA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FTA를 폐기해야 할 달라진 상황’과 도무지 앞뒤를 꿰맞출 수 없는 흐름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FTA를 팽개치면 가장 좋아할 나라가 중국 일본이고, 미국과의 안보·경제동맹 균열에 북한이 가장 먼저 박수칠 것이다. 그만한 분별도 없는 건가.
FTA로 피해보는 농민들의 표를 얻고,반미의 깃발로 진보계층을 열광시킬 수는 있겠지만 결국 꼼수는 잠시 동안 눈과 귀를 가릴 뿐이다. 얄팍한 속임수로 민심을 잡아 나라를 떠맡을 수는 없다. 한·미 FTA가 옳은 선택이었음이 입증되는데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주권을 내주고 국익을 손상시킨 협정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새로운 기회였음이 드러났을 때도 FTA를 폐기하겠다고 나설 것인지, 아니면 또 어떤 말로 “그때는 잘 몰랐다”고 뒤집을지 궁금하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