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이만우 고려대 교수 "재원조달 방법 없는 복지공약, 法 고쳐서라도 막아야"
“재원 조달 방안이 없으면 복지 공약을 못 내게 해야 합니다.”

21일 한국경제학회 신임 학회장에 취임하는 이만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62)는 “최근 여야 가릴 것 없이 표를 의식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대부분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져 어느 당이 집권하든 정치 불신만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정학 권위자다. 지난해 정부 재정정책의 한계 등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의 제자다. 이 교수는 하성근 현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과 함께 21~22일 연세대 대우관에서 ‘2012년 경제학 공동학술대회’를 연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안암동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제 정책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요즘 정치권의 움직임은 경제학 원리와 어긋납니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공약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모병(募兵)제가 아닌데 사병 월급을 높이는 게 과연 시급한 현안입니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손주에게까지 보육비를 지원해야 합니까.”

▶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2007년 기준 7.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9.2%)에 크게 못 미칩니다. 34개 회원국 중 33위에 불과하죠. 복지예산 확대론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저출산·고령화로 가만히 있어도 20~30년 뒤면 복지지출 비중이 높아집니다. 요즘처럼 하루 아침에 ‘OECD 평균으로 가자’고 공약을 남발하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높아집니다. 게다가 우리는 통일비용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복지는 한번 도입하면 없애기 어렵기 때문에 복지 전달 체계를 손질해가면서 신중히 늘려야 합니다.”

▶복지 공약 남발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까.

“복지 공약을 낼 때는 재정조달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국가재정법을 고쳐야 합니다. 재정 계획이 없으면 복지 공약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균형재정’을 입법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과도한 복지 때문에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긴축을 하려고 해도 사회적 갈등만 커지고 있는 그리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저축은행특별법’은 어떻게 보십니까.

“시장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입니다. 위험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는 게 시장원리인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피해를 보상하면 신용질서가 무너집니다. 저소득층이 예금을 못 찾는 일은 가슴 아프지만, 정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한번 원칙이 무너지면 나중에 피해가 생길 때마다 ‘나도 보상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텐데 그땐 어떻게 할 겁니까.”

▶‘부자 증세’도 논란입니다.

“파이를 키우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더 걷어 나눠주는 축소지향적 정책입니다. 세수(稅收)효과가 별로 크지 않으면서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합니다. 그보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려 자연스럽게 세금이 많이 걷히도록 하는 확대지향적 정책을 펴야 합니다.”

▶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再)재협상·폐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한 한·미 FTA를 폐기하자는 건 야당의 자충수입니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입니다. 수출을 늘릴 수 있는 통로로 FTA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남북 대치 상황에서 FTA는 국군과 주한미군에 이어 제3의 국방력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과의 FTA도 교역 활성화 외에 통일을 위한 지렛대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출이 늘어도 내수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품소재산업 육성이 시급합니다. 국산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의 30~40%는 일본산입니다.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수출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부품소재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중요합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주장한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비판이 많습니다.

“대기업 이익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협력을 통해 함께 미래에 대비하자는 겁니다.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을 대기업이 돕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현대자동차가 요즘처럼 잘나갈 때 부품사와 함께 기술투자펀드를 만든다면 서로 윈윈(win-win)이 될 겁니다.”

▶중산층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96~2007년 4.7%였는데, 2008년 이후 3.8%로 떨어졌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진 것도 성장 저하와 관련이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원인은 설비투자가 줄고 저출산·고령화로 경제활동 인구도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혁신으로 인적 자본을 키우고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다각적 정책을 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4%대 성장 잠재력을 복원하는 것이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지름길입니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비스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서비스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큽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말로만 ‘서비스산업 육성’을 외치지 실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금융허브를 하겠다고 했는데 안 됐고, 이 정부 들어서도 영리병원을 하겠다고 했는데 안 됐습니다.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난해 재정학회 세미나에서 ‘반값등록금’ 문제를 기여입학제로 풀자고 하셨는데, 반향이 좀 있었습니까.

“여야 모두 표 떨어질까봐 논의조차 터부(금기)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기여입학제를 통해 재원을 확충하고, 그 돈으로 나머지 학생을 지원하면 서로 윈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여입학 대상을 정원 외로 제한하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자리를 뺏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진지하고 신중한 자세로 토론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최근 미국경제학회(AEA)와 다보스포럼에서도 그런 주제의 토론이 많았는데, 명쾌한 답은 없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자본주의 역사 200년간 대공황도 있었고 우리나라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사회가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같은 것이 대안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기술혁신이 빨라지고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승자 독식’ 현상이 나타나고 공정한 시장경제 규칙이 훼손되는 사례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보완하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현 정부 임기가 1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학점을 준다면 B 정도는 줄 수 있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크게 못한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적은 이보다 더 낮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임기 중에는 무리하지 말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일자리 창출과 물가 안정 등 두 가지 정도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습니다. ”

▶한국경제학회가 올해 환갑(60주년)을 맞았는데, 역점을 두는 사업이 있습니까.

“오는 6~7월쯤 심스 교수나 사전트 교수를 모시고 세계 경제 진단과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세미나를 열 계획입니다. 최근 자본주의 위기론에 대해서도 한국적 시각에서 대처법을 모색해보려고 합니다. ”

■ 이만우 교수는 '작은 정부' 옹호론자…노벨상 사전트·심스 제자

이만우 교수는 ‘작은 정부’ 옹호론자다. 작은 정부가 시장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고, 시장 기능이 활성화돼야 자본주의의 강점인 혁신과 창의력을 복돋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극도로 꺼린다.

유학 시절 은사인 사전트 교수와 심스 교수가 그의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8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가 시작한 합리적 기대이론을 응용·발전시켜 재정정책의 무용론을 강조한 게 미네소타 학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민간대책위원,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세제발전심의위원회 부위원장, 공공기관장평가단 단장 등 정부의 주요 정책에 관여해 왔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