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계들이 올 한 해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흔들어놓을까. 16~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 이곳에서 만난 럭셔리 시계 브랜드 홍보 담당 매니저들은 “예전에 출시했던 고유의 디자인을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해서 내놓은 신제품”이라며 “경기 불황이라는 예측이 많기 때문에 특이한 디자인보다는 심플하고 클래식한 시계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플한 디자인·클래식 재해석’

SIHH에 참가한 IWC, 바쉐론콘스탄틴, 몽블랑, 예거르쿨트르, 랑게운트죄네 등 리치몬트그룹 내 13개 시계 브랜드는 완전히 새로운 제품보다는 과거에 인기를 끌었거나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디자인을 대거 선보였다.

리치몬트그룹에 속하진 않지만 SIHH에 초대받은 5개 브랜드(파르미지아니, 리차드밀, 오데마피게, 장리차드, 제라드페리고)도 ‘클래식 워치’를 내놓은 건 마찬가지였다. 시간과 분을 알려주는 핸즈(시계바늘)만 다이얼(문자판)에 담은 제품부터 다이얼을 옆으로 민 다음 뒤집어 1개 제품으로 2개 효과를 내는 시계까지 각 브랜드의 대표격인 시계들이 많았다.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 바쉐론콘스탄틴은 1912년에 내놨던 토노 타입(사각형의 각 변을 둥글게 만든 것)이 출시된 지 10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해 투르비옹(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을 달아 새롭게 내놨다. 몽블랑은 1858년에 나왔던 빌르레 컬렉션을 새롭게 재해석한 ‘뉴 빈티지 타키데이트’를 출시했다.

예거르쿨트르는 1931년 선보인 리베르소 모델(다이얼을 뒤집을 수 있는 시계)을 레드 색상의 다이얼, 다이아몬드 세팅 버전 등 다양하게 선보였다. 보메메르시에는 44 다이얼 크기의 케이프랜드 컬렉션을 ‘클래식 워치’의 대표작으로 내놨다.

몽블랑을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로통상의 임충식 사장은 “올해는 네오클래식(심플+클래식)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복잡한 기능을 여럿 넣어 만든 시계)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캘린더·울트라신 다양해져

‘캘린더’도 올해 SIHH의 특징이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년을 감안해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2월29일을 자동으로 맞춰주는 것)을 지닌 시계를 대거 선보인 것이다. IWC는 남성적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파일럿 워치 컬렉션에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을 더했고, 랑게운트죄네도 기본적인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끈 랑게원에 퍼페추얼 캘린더와 투르비옹을 단 버전을 추가했다.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이 고가이다보니 이보다 한 단계 아래 버전인 애뉴얼 캘린더(30일과 31일이 있는 달을 알아서 맞춰주는 기능)를 장착한 제품들도 나왔다. 가장 저렴한 엔트리 시계가 2000만원대인 파르미지아니는 톤다 레트로그레이드 애뉴얼 캘린더 제품을 새로 내놨다. 이 제품은 국내에선 3800만~4000만원대에 들어올 예정이다.

더 얇게 만들려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것은 예년과 비슷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시계(두께 5.25) 기록을 갖고 있는 피아제의 알티플라노는 올해 스켈레톤(기계 부품이 훤희 들여다보이게 투명하게 만든 다이얼) 버전을 내놨다. 이 제품은 두께 5.34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오토매틱 스켈레톤 시계가 됐다. 예거르쿨트르의 듀오미터 퀀템 루나 40.5 역시 기존의 42 제품보다 더 작고 얇게 만들었다.



◆리미티드 에디션 경쟁

시계 브랜드가 워낙 많고 경쟁도 치열해지다 보니 특정 수량만 만드는 한정판을 선보이려는 브랜드도 늘어나는 추세다.

파르미지아니는 40억원짜리 용 모양 탁상시계 ‘드래곤 드 라 사보아’를 딱 1개만 만들었다. 4가지 톤의 소리가 나는 미닛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를 장착한 예거르쿨틀르의 ‘그랑 소네리 웨스트민스터’는 올해 10~15개만 생산할 예정이다. 로저드뷔는 올해 처음으로 여성용 벨벳 라인을 내놨는 데 다이얼에만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시계는 물론 다이얼과 스트랩을 다이아몬드로 꽉 채운 제품도 선보였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