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인 S&P가 프랑스를 비롯한 유로존 9개 국가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한 데 대해 유럽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3대 신평사가 모두 영미계라는 점에서 앵글로색슨의 음모라는 주장에서부터 미국 부채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술책이라는 비난까지 제기되는 모양이다. 이런 분석이 뒷골목도 아니고 의회 등에서 버젓이 등장한다고 한다. 실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런 정신 상태라면 유럽 사태 조기 해결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자신이 만든 문제다. 신용평가사들이 국가부채를 늘려놓은 것이 아니다. 신용등급이 어차피 상대성을 가진다면 오히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등급이 떨어졌는데 유로존 국가의 등급이 멀쩡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유럽 병은 고질(痼疾)에 가깝다. 소위 68혁명 세대가 40년간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각 분야를 말아먹으면서 유럽은 이미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과도한 평등주의가 자본주의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고, 일하는 정신을 손상시켜온 것이 지난 40여년이다. 성과 보상의 원칙과 땀의 가치도 사라졌다. 이런 기반 위에서 출범한 유로 시스템이 방향을 제대로 찾을 리 없다. 처음부터 많은 문제들이 제기됐지만 아무도 해결하려들지 않았다. 포퓰리즘은 무상 시리즈로 각국의 곳간을 거덜냈고, 일자리는 점차 사라졌다. 이게 유럽 좌파들이 대학생들을 선동해 만들어냈던 1968년 문화혁명의 결과다. 오죽하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68혁명의 유산이 프랑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68혁명의 관(棺)에 못을 박겠다고 나섰을까. 68혁명의 이상과 꿈은 게으른 환상이었을 뿐이다.

사실 한국 사회라고 다를 것도 없다. 87년 체제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386세대들이 정치권의 주력으로 성장하면서 이념적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체제를 앞장서 비판하는 이른바 강남좌파들이 던져주는 마약에 2040세대들은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한국은 언제쯤 87년 체제를 극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