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배출권 강행…한국기업 '발등의 불'
유럽연합(EU)이 밀어붙이고 있는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탄소배출권거래제(ETS)가 국내 기업에도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유럽식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소극적인 국내 기업들에 전용기 운항을 이유로 배출 부담금을 물리기로 한 EU 측 의도를 놓고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국내 항공사들은 앞으로 1~2년간 자체적으로 추가 비용을 흡수할 방침이지만 결국 유럽 항공권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유럽 항공사에 비해 친환경 연료 개발 등 관련 기술개발에 뒤처져 있어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에만 290만유로 부담

국내 항공사들은 신규 취항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올해 제한량보다 총 22만3000t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배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EU 탄소배출권의 평균 가격인 t당 13유로로 환산하면 부담 규모는 약 290만유로(43억원)가 될 전망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허용량 대비 5~6%가량이 초과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확한 수치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유럽 노선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어 절대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오는 4월부터 인천~런던 노선을 기존 주 7회에서 10회로 확장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도 차세대 항공기인 A380을 투입할 계획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독일 프랑스 노선을 증설하는 등 유럽 노선을 강화해나간다는 전략이다.

◆“운임 인상으로 이어질 것”

한국교통연구원은 올해 국내 항공사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을 60억원으로 분석했다. 부담액은 내년에는 두 배인 120억원, 2020년에는 380억원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연구원 측 전망이다.

ETS 도입이 당장 항공운임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항공사들은 1~2년간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체적으로 배출권 구매금액을 충당할 방침이라고 국토해양부에 통보했다. 전문가들은 유럽 항공운임이 최대 1만원가량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전용기를 운항하고 있는 기업들은 유럽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적용받게 된 배경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항공기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항공사에 적용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며 “전용기를 운항하는 한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지 일반적인 규제인지를 알아보도록 현지 법인에 주문했다”고 전했다.

EU의 밑어붙이기식 환경규제에 국제사회는 반발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감축에는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감축량이나 시행 시기 등을 EU가 일방적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미국 민간항공연합은 EU의 방침이 일방적이고 부당하다며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했다. 하지만 ECJ는 지난달 21일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가 간 무역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명의의 항의 서한을 발송해 보복 조치에 대해 언급했으며, 중국은 홍콩에어라인이 주문한 38억달러 규모 A380 항공기에 대한 주문 취소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