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사원에게 배워라"… 미국 '逆멘토링' 확산
미국 정보기술(IT) 업체 시스코는 최근 ‘역멘토링(reverse mentoring) 제도’를 도입했다. 말단 사원이 선배나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는 것.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과 반대다. 임원이나 고참직원들이 역멘토링을 통해 젊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수 있는 감각을 익힐 수 있다는 취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역멘토링 제도가 기업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2년 전 제너럴일렉트릭(GE)이 처음 이 제도를 도입한 후 최근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 등 급변하는 기업환경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의 지식과 생각을 기업경영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말단 직원도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돼

변화에 민감한 IT 업계와 광고업체들이 가장 발빠르게 역멘토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IBM의 젊은 직원들은 고참 직원들에게 트위터 페이스북 사용법을 가르친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는 IT 기기도 직접 써보도록 한다. SNS 교육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소셜컴퓨팅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 위기에 빠진 휴렛팩커드에서는 직원들 스스로가 역멘토링 도입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수개월 이내에 전 세계 지사에서 시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광고업체 오길비앤드매더 직원들은 후배들로부터 최신 트렌드를 배운다. 패션, 음악, 젊은 사람들이 쓰는 인터넷 용어 등이다.

역멘토링을 도입한 은행도 있다. 영국 쿠츠은행은 올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자산관리 업무를 하면서 젊은 고객들과 상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았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배들의 멘티가 되는 것을 자원했다.

WSJ은 “역멘토링은 젊은 직원들의 주인 의식을 높이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말단 사원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도 중요한 성과다.

오길비의 스펜서 오스본 이사는 “역멘토링 제도로 젊은 직원들이 회사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며 “사기가 높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라 엘런 시스코 이사도 “역멘토링은 모든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평가했다.

◆GE가 도입한 후 SNS 열풍 타고 확산

역멘토링은 GE의 전 회장 잭 웰치가 최고경영자(CEO) 시절 만들었다. 웰치는 1999년 영국 출장 중 말단 엔지니어로부터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린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웰치는 출장에 돌아온 직후 500명의 임원에게 직접 후배들을 선택하게 했다. 인터넷 사용법을 알려달라며 접근하라는 지시였다. 웰치도 20대 여성 직원의 멘티가 되었다. 웰치는 “역멘토링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며 “젊은 직원들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후 역멘토링은 기업들 사이에서 꾸준히 도입돼 왔다. 그리고 최근 SNS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잇따라 등장하며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월간지 패스트컴퍼니는 “현재 역멘토링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회사는 전체 기업의 40%에 달한다”며 “살아남기 위해선 20대와 친해져야 한다는 40~50대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