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딜레마…공약 했는데 현실은 '아니네'
뉴타운, 우면산 산사태 재조사 등 산적한 시정 현안을 놓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 시장이 “시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겠다”며 선거 때 내세웠던 주요 공약들이 재정여건 등 현실과 부딪히면서 정책 방향에 혼선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뉴타운 전면 재검토에서 신중 모드로

박 시장은 선거 때부터 “전임 시장들이 추진했던 뉴타운 재개발·재건축은 실패한 사업”이라며 “과속 개발 방지를 위해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7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현재 뉴타운 문제에 대해 박 시장은 한 발 후퇴했다. 박 시장은 최근 “뉴타운 사업에 대해 찬성하는 주민들도 많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찬성 및 반대하는 원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줄곧 비판해 왔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도 “(해당 사업에) 반대가 많을 경우 지원이 어렵지만 찬성이 많을 경우 신속한 추진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용산 재개발뿐 아니라 뉴타운 사업 등의 정책이 전면 재검토되면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박 시장도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에 대해서도 박 시장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달 말엔 “우면산 산사태를 천재지변으로만 보고 넘어가선 안 된다”며 인재에 좀더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지난주 산사태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선 “산사태 원인에 대해선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한 발 물러선 듯한 입장을 취했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을 놓고 박 시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약 ‘천재’로 결론짓고 재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피해 주민의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지지 세력 요구에도 묵묵부답

박 시장은 자신을 지지하는 단체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 박 시장을 적극 지지했던 민주노총은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노조원 34명에 대한 복직을 강력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선거 때 “(해고자 복직 문제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늦어도 구정 선물로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정된 게 없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박 시장이 지난 21일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도 이 같은 원론적인 입장만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고자들이 복직되면 서울메트로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노총 세력과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시장이 쉽사리 복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 방재 인프라 개선사업도 마찬가지다. 지난여름 100년 만의 폭우로 서울시 곳곳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자 당시 오세훈 전 시장은 하수관거 용량 확대, 빗물 펌프장 확충 등에 5년간 1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박 시장은 선거 과정에서 “하수관거 사업은 무리한 대규모 토목공사”라며 해당 사업을 유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박 시장이 지난 10일 내년도 예산안 브리핑에서 “도시 안전이 서울시 최우선 과제”라고 언급한 것과는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는 “과거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박 시장이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힌 문제에 대해 중재하는 역할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며 “향후 서울시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